양주 웹진
양주 대모산성,
신라와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1,000년 지키던 산성
삼국통일의 계기가 된 매초성에서 조선의 요충지까지, 역사의 거목이 된 산꼭대기

양주 현지 사진
양주시 유양동과 백석읍 방성리에 걸쳐 있는 대모산(해발 212m) 정상에 남겨진 대모산성은 신라 문무왕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품고 있어요. 675년(신라 문무왕 15) 당나라 대군을 격퇴하고 대승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는 매초성 터로, 삼국통일을 완수하는 계기가 된 유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무려 1,000년 이상을 견디며 여러 왕조의 손을 거쳐온 산성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신라의 전략 거점에서 고려·조선의 요충지로 변모하다
대모산성은 임진강과 한강 유역을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 잡았어요. 이런 위치 때문에 여러 지역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행정 치소로 기능했습니다. 타원형을 이룬 성벽의 둘레는 약 1.
4㎞, 높이는 4~5m 안팎으로 북문지 좌우측과 동편 등 3개소에는 약 70~80m의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습니다. 다른 곳은 대부분 무너졌지만, 남겨진 유구들이 당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백제부터 조선까지, 여러 시대의 유물이 겹겹이 쌓인 고고학적 보고
대모산성에서는 3개의 성문과 여러 건물지, 5곳의 우물 흔적이 확인되었어요. 출토된 유물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 유물이 주류를 이루며, 이후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유물도 고루 분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문 터 북쪽에서 백제계 토기가 많이 출토되어 성벽이 축조되기 이전에도 토루나 목책 등의 방어 시설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어요.
신라에 의해 쌓아진 후 고려~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여러 시대를 거쳐 증축되고 보수된 흔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산 위의 유적지이므로 방문 전 날씨와 등산 경로를 미리 확인하시고, 안전한 복장으로 방문하실 것을 추천합니다.
삼국통일의 무대에서 조선의 요충지까지, 1,000년을 견딘 산성의 역사가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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