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문 사건과 불굴의 신앙,
신흥사의 역사
화북면의 절, 안락행 김교순의 삶

상주시 화북면 중벌길에 있는 신흥사는 안락행 김교순 보살에 의하여 1925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절의 창건 연도를 보면 이미 일제강점기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시대에 절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이 절과 그 창건자가 어떤 신앙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김교순, 안락행 보살의 삶
경내의 김교순여사사리급신흥사창건비(1970년)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김교순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그는 1881년(고종 18) 경북 예천에서 출생했습니다. 21세 되던 해인 1901년 보은 속리산에서 용허선사로부터 보살계를 받고, 불명을 안락행(安樂行)이라 지었습니다.
'안락행'이라는 이름에는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려는 실천'이라는 불교적 이상이 담겨 있습니다.
국화문 사건, 불굴의 항거
김교순의 진정한 절개는 1926년 일어난 '국화문사건'에서 드러납니다. 이것은 일제시기 일본 천왕만 사용할 수 있는 국화문양을 문살에 넣은 사건으로, 일제는 이를 불경죄로 간주했습니다. 김교순은 이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재판소에 수감됐어요.
하지만 그녀의 저항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수감 중 20일간 단식 염불을 했는데, 이는 단순한 항의를 넘어 생명을 건 저항이었어요. 기록에 따르면 일본인 경사들이 그 모습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 뒤 석방된 후에도 중생구제와 염불, 참선으로 일관하며 신앙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찰의 건축과 현재의 모습
김교순이 신흥사를 창건한 후, 사천왕문을 비롯하여 칠성각과 약사전, 대웅전 등의 불사를 이루었습니다. 신흥사에는 약사여래좌상과 탱화, 민화 2점이 있으며, 단청의 모습이 여느 절과 다른 특이한 문양의 소박함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신흥사 인근에는 속리산 국립공원과 사담관광농원이 있어서, 산림욕과 함께 절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입지를 갖고 있습니다. 절의 건축과 주변 풍경이 어우러져, 현대의 방문객들에게도 영적 고요함을 선사하고 있어요.
국화문 사건과 20일의 단식으로 저항한 안락행 보살. 신흥사에서 만나는 불굴의 신앙과 시대정신이 현대까지 울려 퍼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