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철 속에서도 살아남은 서원,
효곡서원의 역사
공성면에서 만나는 임진왜란 의병장들의 정신

상주시 공성면에 위치한 효곡서원은 김충, 송량, 고인계, 김광두 네 명의 선현을 제향한 서원입니다. 이 네 사람은 모두 임진왜란 시대와 그 이후를 살아낸 선비들로, 각각의 삶에서 의병과 절의라는 주제를 보여주고 있어요.
문과 급제와 학맥의 전승
김충은 1513년생으로, 1515년(명종 6)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 기주관, 호조정랑 등을 역임했습니다. 송량은 1534년부터 1618년까지 살면서, 성운(1497~1579)의 문인이 되어 그의 학맥을 이었어요. 송량은 헌릉참봉, 한성참군 등을 지냈고, 동지들과 함께 오현원을 창건하고 학규를 만들어 후진 양성에 전력했습니다.
임진왜란 속의 의병장들
고인계는 정치적 파벌인 북인에 가담하기를 거절했다가 영서도찰방으로 좌천됐어요. 이후 사직하고 인조반정(1623년) 이후에 성균관전적, 형조좌랑, 예안현감 등을 역임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현실 정치에 얽히지 않으려는 절의적 태도를 보여주는 부분이에요.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김광두입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정경세, 이전, 이준 등과 함께 창의하여 왜군을 격퇴했어요. 전란이 끝난 뒤에는 사설 의료원인 존애원을 설립하는 데 동참하며,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민생을 돌보는 일에 힘썼습니다.
훼철령을 견딘 서원의 역사
효곡서원의 건립 과정을 보면, 조선시대 서원 문화의 전개를 알 수 있어요. 1685년(숙종 11)에 송량을 배향한 세덕사로 출발했고, 1724년(경종 4) 지세가 좁고 불편하여 공성면 각회산 아래로 이건했습니다. 1735년(영조 11)에 김충과 고인계를 추배하여 서원으로 승원했어요.
1780년(정조 4)에는 각회산 아래에 있던 서원을 절동으로 다시 이건했고, 1786년(정조 10)에 김광두를 추배했습니다. 하지만 1870년(고종 7)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는 시련을 맞이했어요. 이후 1902년 유림의 공의로 단소를 설치하여 단향을 봉행했고, 1931년 상주 유림의 공론으로 본래 자리 근처에서 서북쪽으로 약간 옮겨 강당을 건립했습니다.
1968년에 비로소 묘우를 중건하여 복원 고유제를 봉행하게 된 것입니다.
훼철령이라는 극심한 시대 속에서도 복원된 효곡서원. 조선 선비들이 지켜내고 싶었던 정신이 이 절과 서원들을 통해 어떻게 전해져 왔는지 생생하게 느껴질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