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서 현재까지,
칠봉산 자락의 호국 사찰 황령사
임진왜란을 견디고 근현대까지 이어온 상주의 의병 발원지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성주로에 있는 황령사는 직지사의 말사로, 칠봉산 자락에 자리한 절입니다. 정확한 창건 시기는 전해지지 않지만, 신라시대 638년 의상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 이후 889년에 대구화상이 중창하면서 이 절은 오랜 세월 상주 지역의 영적 중심이 되어왔습니다.
고려시대 호국 승려, 홍지의 발자국
황령사가 갖는 진정한 가치는 역사 속에서 드러나요. 고려시대 1254년, 몽고의 장군 차라대가 상주성을 침공했을 때, 황령사의 승려 홍지가 관민병을 이끌고 맞서 싸웠습니다. 그는 적의 넷째 장수를 쏘아 죽였고, 이로 인해 적병의 사상자가 반수 이상에 이르자 몽고군은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어요.
이것이 바로 호국사찰 황령사의 첫 번째 역할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황령사는 그 역할을 멈추지 않았어요. 함창을 중심으로 봉기한 창의진의 발원지로 알려지면서, 다시 한 번 국토수호의 기치를 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열정의 시간은 병화로 이어졌고, 대웅전, 천불전, 나한전, 신금당 등 주요 건물들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게 됐습니다.
근현대 속에서 복원된 절
황령사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중수를 거쳤어요. 1901년에 중수되었고, 1928년에는 도허라는 승려에 의해 다시 정비되었습니다. 하지만 1962년 다시 소실되는 시련을 맞이했어요.
현재의 신금당은 1966년 주지 이상호에 의해 중건됐고, 1976년과 1980년에 걸쳐 대웅전의 기와 보수와 단청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복원의 노력들은 고려 이래로 계속된 호국사찰로서의 정신을 현대에도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여줘요.
현재 황령사의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석가 삼존불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절 곳곳에서는 그동안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요. 사찰 입구에는 벽허당부도가 있고, 인근 못 근처에 있던 것을 옮겨온 유물들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황령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아미타후불탱과 신중탱인데, 이들은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라는 것입니다. 이 탱화들은 조선후기 경기도 화파인 상겸파가 경북지역에 미친 영향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어 있어요. 18세기 황령사의 사세를 짐작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부터 임진왜란을 거쳐 현재까지, 호국의 정신을 놓지 않은 황령사. 상주의 깊은 역사가 모두 담긴 절을 걸을 때,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