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을 견딘 사찰의 부활,
귀정사
여러 번의 재난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는 고찰의 이야기
남원 산동면에 자리한 귀정사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어요. 이 절은 515년 현오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최초의 이름은 "만행사"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귀정사"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을까요?
이름의 변화 자체가 이 절의 위상을 보여주는 거예요. 백제의 왕이 직접 절에 참배를 와서 고승의 설법에 탄복하여 3일간 절에 머물렀다고 해요. 그 모습이 마치 정치를 다시 돌본다는 의미의 '귀정(歸政)'이었기에, 이 절의 이름을 귀정사로 바꾸게 된 거죠.
반복되는 시련 속에서도 지켜낸 법맥
귀정사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시련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어요. 1221년에는 대방(남원의 옛 이름) 태수의 요청으로 제2의 백련결사가 개설되었는데, 이는 불교의 학파적 전통을 이으려는 노력이었어요. 고려 목종 5년(1002년)에는 대은스님이 절을 크게 중창했고, 조선 세조 때도 낙은스님이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중창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위기는 절마다 찾아왔어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절의 건물들이 모두 소실되었고, 현종 때 설제대사가 옛 모습대로 복구한 후에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가장 큰 시련은 한국전쟁 때 찾아왔어요. 그 전쟁으로 옛 귀정사의 건물들이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이전까지 절은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등 11개의 전각을 갖추고 있었고, 남암, 상암, 대은암, 낙은암 등의 부속 암자도 있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삼존불상이 충청도 수덕사로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절의 법맥은 끊어지지 않았어요.
1968년 유정동 스님이 보광전, 승당, 요사채를 복원하면서 귀정사의 부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2006년부터는 새로운 불교 운동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의 터전이 되면서 본격적인 중창불사가 이루어졌어요. 보광전을 개축하고, 만행당, 관음전, 산신각, 종각 등을 새로 건립했습니다.
현재는 인드라망 수련원, 만행산 귀농학교, 숲살림원, 사회연대 쉼터 인드라망 등이 운영되면서, 절이 단순한 종교시설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역할도 하고 있어요.
1500년을 넘는 세월 동안 몇 번의 재난을 겪으면서도 법맥을 이어온 귀정사. 그 부활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민족의 회복력을 느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