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척화비,
1871년에 세워진 경고의 비석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세워진 척화비, 지금도 설천면 노량에 남아 있어요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로183번길에는 남해척화비라는 이름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어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 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세우도록 한 척화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곳에 서 있는 거예요. 고종 8년인 1871년에 다른 척화비들과 함께 세워진 뒤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켜온 비석이라, 남해 여행길에 한번 둘러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번 글에서는 남해척화비가 어떤 배경에서 세워졌는지, 그리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볼게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그리고 척화비 건립
남해척화비라는 이름에 들어간 '척화'는 화친을 배척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공식 설명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라는 두 차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뒤, 서양 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도록 했다고 해요. 남해척화비도 바로 그때 세워진 여러 척화비 가운데 하나예요.
이름만 보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조선 후기의 대외 정책을 그대로 담고 있는 비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병인양요는 프랑스와, 신미양요는 미국과 벌어졌던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두 차례의 충돌을 겪으며 흥선대원군은 서양과의 교류를 한층 더 경계하게 되었고, 그 뜻을 돌에 새겨 곳곳에 세운 것이 바로 척화비였다고 전해져요. 남해척화비 역시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세워진 비석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자신감과 동시에, 앞으로도 서양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겠다는 뜻이 함께 담겨 있는 셈이에요.
이 비석이 세워진 해는 고종 8년, 서기로는 1871년이에요. 대원군의 명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서울뿐 아니라 지방 곳곳에도 척화비가 세워졌는데, 남해 지역에도 이렇게 서양 세력에 대한 경계의 뜻을 담은 비석이 들어서게 된 거예요. 지금의 설천면 노량로183번길이 바로 그 자리예요.
한 지역의 관청이 중앙의 명을 받아 비석을 세웠다는 점에서, 당시 조정의 뜻이 지방 곳곳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을 짐작해볼 수 있어요.
낮은 받침돌 위에 지붕돌을 얹은 독특한 모습
남해척화비는 생김새에서도 눈에 띄는 특징이 있어요. 낮은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는 지붕돌을 올려놓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지역에 세워진 척화비와는 다른 형태라고 해요. 척화비라고 하면 흔히 단순한 비석의 모양을 떠올리기 쉽지만, 남해척화비는 그 위에 지붕돌까지 얹어 조금 더 공들인 형태로 완성돼 있어요.
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비석을 이루고 있는 셈이에요.
공식 설명에 따르면 이런 독특한 양식은 당시 대원군의 명으로 척화비를 곳곳에 세우자, 이 지역의 관청에서 그것을 본떠 세우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고 해요. 즉 원래의 척화비 양식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지역 관청 나름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해 세운 결과물인 셈이에요. 같은 목적으로 세워진 비석이라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중앙의 명이 지역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나름의 변형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남해척화비를 둘러볼 때는 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이 어떻게 어우러져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시면 좋아요. 다른 지역에서 척화비를 본 적이 있다면, 그 모습과 남해척화비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어요. 같은 시대, 같은 목적으로 세워졌지만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양식을 갖게 된 이유를 떠올리며 둘러보시면 더 뜻깊을 거예요.
사진으로 남길 때도 지붕돌까지 함께 담아보시면 이 비석만의 특징을 잘 기록할 수 있어요.
세월이 흐르며 대부분 철거된 척화비
척화비는 고종 8년인 1871년, 전국에 일제히 세워졌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조선이 세계 각국과 교류를 맺기 시작하자, 세워졌던 척화비 대부분은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다고 해요. 한때는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비석이었지만, 지금은 그 수가 크게 줄어든 셈이에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비석의 운명도 함께 달라진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공식 설명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이 물러난 뒤 세계 각국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척화비가 철거되었지만, 남해척화비처럼 몇 기의 비석은 여전히 남아 그 속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를 전하고 있다고 해요. 남아 있는 비석 하나하나가 그 시대를 증언하는 자료인 셈이에요. 철거되지 않고 지금까지 남을 수 있었던 이유까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만큼 귀한 자료라는 점은 분명해요.
그렇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척화비 가운데 하나가 지금 설천면 노량로183번길에 자리한 남해척화비예요. 한 시대의 대외 정책을 돌에 새긴 기록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은 곳이라,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번쯤 찾아볼 만한 장소예요. 아이와 함께 방문한다면 조선 후기의 대외 관계를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돌에 새긴 척화의 뜻이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설천면 노량, 남해와 하동을 잇는 길목
남해척화비가 자리한 설천면 노량로183번길은 경상남도 남해군에 속한 지역이에요. 남해군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보니, 이곳을 찾아가려면 다리를 건너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참고하시면 좋아요. 목적지의 정확한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찾아가시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처음 남해를 찾는 분이라면 도로 사정을 미리 검색해보고 출발하시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노량이라는 지명은 남해와 인접한 하동을 잇는 길목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에요.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통로 역할을 해온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남해척화비는 바로 이 노량 지역, 설천면 노량로183번길에 자리하고 있어요.
남해와 하동을 오가는 길목이라는 위치를 알고 찾아가면, 이 지역의 지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예요.
남해척화비를 둘러본 뒤에는 설천면 일대를 함께 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남해군에는 이 밖에도 여러 관광지가 있으니, 방문 계획을 세울 때 남해척화비와 가까운 다른 장소들을 함께 묶어 동선을 짜보시는 것을 추천해요. 처음 남해를 찾는 분이라면 미리 지도를 살펴보고 이동 순서를 정해두면 한결 수월하게 둘러볼 수 있어요.
여유가 있다면 하루 일정을 넉넉히 잡아 남해군 곳곳을 천천히 둘러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돌 하나에 새겨진 한 시대의 경계, 남해에 들르는 길에 한번 마주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