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 임제가 글을 배우던 정자,
영모정
중종 15년에 지어진 정자, 명문장가의 흔적이 남은 곳

나주 영모정은 중종 15년에 귀래정 임붕이 건립한 정자예요. 이 지방 출신의 명문장가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글을 배우고 시작(詩作)을 즐기던 유서 깊은 건물이에요. 정자라는 공간은 선비들의 정신세계가 담기는 곳이에요.
이곳에서 누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배웠고 시를 지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조선시대 선비 문화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어요.
이름이 바뀐 까닭
정자의 이름도 흥미로운 변화를 보여줘요. 초기에는 건립자 임붕의 호를 따 '귀래정'이라 불렸어요. 귀래(歸來)라는 이름에는 어떤 깊은 뜻이 담겨 있었을까요.
하지만 명종 10년 임붕의 두 아들 임복과 임진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재건하면서 '영모정'이라 이름을 바꾸었어요. 귀래의 호에서 아버지를 향한 모정(母情)으로, 그 이름이 담은 감정이 변했어요. 정자의 이름 하나가 가족의 시간과 마음의 변화를 증언하고 있는 거죠.
건축 양식에 담긴 조선시대의 미학
현재의 영모정 건물은 1982년과 1991년에 다시 중건한 것이에요.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한 무고 주 5량가구 형식이에요. 세부 양식을 보면, 두벌대의 다듬돌 바른 층 쌓기의 기단 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최근에는 그 위에 원형 장대석 주춧돌을 세웠어요.
위에는 아랫부분을 잘라버린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보와 장혀, 도리를 정교하게 결구했어요. 굵은 보를 걸치고 동자주를 세워 마룻보를 걸치고, 판대공과 파련 대공을 섞어 대공을 놓고 종도리를 설치했어요. 이 모든 세부가 조선시대 목조건축의 미학을 담고 있어요.
백호 임제는 당대의 뛰어난 문인이었어요. 이곳 영모정에서 글을 배우고 시를 짓던 그의 삶은, 단순히 개인의 성취를 넘어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한 것이었어요. 정자가 남겨진 이유는 건축물 자체의 가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꽃피웠던 문화와 정신 때문이에요.
백호 임제가 글을 배우고 시를 지었던 영모정, 정자에서 들려오는 붓소리와 시인의 목소리를 상상해봅니다. 조선시대 문인 정신이 담긴 이 공간에서 지난 시간을 느껴봅니다. 나주 여행, 계속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