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웹진나주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3분

초의선사가 수행한 절,
운흥사의 시간들

도선국사부터 초의선사까지, 1100년을 이어온 사찰의 이야기

초의선사가 수행한 절, 운흥사의 시간들
나주 현지 사진

다도면에 자리한 운흥사는 당나라 희종 시대인 846년에서 887년 사이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절이에요. 이 지역의 지세가 좋아 흥덕으로부터 온 도선국사가 도성암에서 첫 강회를 열고 터전을 닦았던 그 시작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신라 효공왕 시대인 897년에서 911년 사이에 웅점사로 개칭되었다가 웅치사, 그리고 운흥사로 이름이 바뀌면서 오늘까지 그 역사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전쟁을 견디고, 다시 일어선 절

경내 전경
경내 전경

1775년 정문이 쓴 진여문4중창기에 기록된 당시 운흥사의 모습은 대웅전, 침계루를 포함해 무려 380여 칸의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사찰이었어요. 이렇게 큰 규모의 절이 한국전쟁으로 거의 소실되고 말았어요. 무너진 사찰은 규모가 축소되었고, 오랜 세월 그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8년 혜원스님이 부임하면서 대불사가 진행되었고, 현재의 운흥사 모습을 갖추게 되었어요. 전쟁의 소실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선 절, 그것이 지금의 운흥사예요.

운흥사는 또 다른 이유로도 유명해요. 조선 후기의 뛰어난 승려인 초의선사가 출가한 곳이 바로 이 절이거든요. 초의선사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당대의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차 문화의 거목으로 알려진 인물이에요.

이곳 운흥사에서 배우고 수행한 초의선사의 흔적이 아직도 절에 남아있어요.

절을 지키는 돌 장승

운흥사의 건축
운흥사의 건축

운흥사 입구에는 운흥사와 문화재청에서 함께 관리하는 남녀 한 쌍의 돌 장승이 있어요. 사찰 앞에 세우는 이 장승은 경내의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역할을 해왔어요. 흥미로운 점은 이 석장승이 사찰에서 500m 떨어진 밭 가운데 마주 보고 서 있다는 것이에요.

왼쪽이 남자, 오른쪽이 여자의 모습인데요. 남장승의 높이는 270cm, 둘레는 192cm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로,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코, 삐져나온 송곳니가 있지만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에요. 몸체에는 '상원주장군'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장승은 웃는 표정으로 소박한 모습이며, 깊은 선으로 표현된 눈과 주걱턱의 표현이 인상적이에요. 여장승 뒷면에는 조선 숙종 45년인 1719년이라는 제작 연대가 새겨져 있어서 정확한 시대를 알 수 있죠.

이 지역이 '다도면'인 것만 봐도 이곳의 특별함을 알 수 있어요. 조선시대부터 차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이 지역에는 지금도 사찰 주변에 야생 차나무들이 자라고 있답니다.

도시전설 팁
방문 시 정확한 개방 시간을 미리 확인해보세요. 돌 장승의 위치와 운흥사 경내의 산책 동선도 함께 알아두면 좋습니다. 초의선사와 차 문화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사전에 관련 자료를 읽어보시기를 추천해요.
1100년의 시간 속에서 초의선사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나주의 차 문화를 만나봅니다. 나주 여행, 계속할게요!
#운흥사#초의선사#차 문화#돌 장승#사찰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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