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웹진밀양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3분

조선 중종 시대 학자의 은거지,
월연정에 앉아 경관을 마주하다

기묘사화 이후 용평동 강가에 지은 정자, 500년을 견딘 조용한 공간

조선 중종 시대 학자의 은거지, 월연정에 앉아 경관을 마주하다
밀양 현지 사진

용평동 용호강가에 자리한 월연정(月淵亭)은, 조선 중기의 한 학자가 벼슬을 내려놓고 삶을 성찰했던 공간입니다. 이곳에 서면 500년 전의 그 선택이 얼마나 절실했을지, 강물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요. 월연정은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는가를 보여주는 실존의 공간입니다.

기묘사화, 그리고 벼슬을 버리다

대청 쌍경당
대청 쌍경당

월연정의 주인공은 월연 이태(月淵 李泰) 선생입니다. 조선 중종 15년(1520), 그는 이곳에 정자를 지었는데, 그 배경에는 한 정치인의 비극이 있어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성리학에 입각해 개혁정치를 추구했던 조광필 파가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의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조정의 반대파들에 의한 정치적 숙청이었어요. 이태 선생은 그 동료들의 비극을 목격하고,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를 택했습니다. 그것이 월연정이 지어진 이유였죠.

월연정의 대청인 쌍경당(雙景堂)은 임진왜란으로 불탔지만, 영조 33년(1757)에 월암 이지복이 다시 지었습니다. 고종 3년(1866)에는 이종상과 이종증이 정자 근처의 월연대를 보수하고 재헌(齋軒)을 지었습니다. 이러한 수리와 개축의 역사는, 월연정이 후손들에게 얼마나 귀중한 공간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어려운 시대마다 그들은 이곳을 찾아 선현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려 했던 것이죠.

경관을 마주하는 공간의 설계

월연정은 앞면 5칸·옆면 2칼으로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습니다. 쌍경당에는 문을 달아 열면 주위 경관을 볼 수 있게 했으며, 방과 아궁이를 설치해 4계절 두루 살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재헌도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로, 대청·방·대청의 형태로 지었습니다.

제일 높은 언덕에 있는 월연대는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중앙 1칸만 4면에 미닫이문을 단 방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경관을 감상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게 한 설계의 묘미예요. 경관이 뛰어난 곳에 모여 있는 이 모든 건물들은, 정자의 기본 기능인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을 철저히 고려한 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전설 팁
월연정 방문 시 입장 요금, 개방 시간 등을 미리 확인해 두세요. 강가의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므로, 계절마다 다른 경관을 감상하며 방문하는 것도 좋습니다. 백송과 오죽 등 희귀한 나무들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기묘사화의 비극 이후, 한 선비가 선택한 장소가 월연정입니다. 500년을 견딘 이 정자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정신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월연정#용평동#정자#조광필파#기묘사화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함께 둘러보면 좋은 지역전국 118개 지역 인덱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