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웹진밀양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3분

형제의 우애와 학문으로 향도에 이름을 날린 서원,
삼강서원

낙동강가 민씨 5형제를 배향하는 삼랑진읍의 인문학 공간

형제의 우애와 학문으로 향도에 이름을 날린 서원, 삼강서원
밀양 현지 사진

삼랑진읍 낙동강가에 자리한 삼강서원은 이름만 들어서는 쉬 찾기 어려운 곳이지만, 조선시대 형제 간의 우애와 학문의 전통을 지켜온 소중한 공간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보존하는 곳이 아니라, 오랜 세월 지역민들의 학맥과 문화를 이어온 살아있는 공간이에요. 낙동강의 경치와 어우러진 정자와 사당을 거닐다 보면, 조선 시대 선비들의 삶의 태도가 무엇이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5형제 선비의 우애가 남긴 유산

서원의 강당
서원의 강당

삼강서원의 이야기는 1510년(중종 5)부터 시작됩니다. 조선 연산군·중종 시대의 학자이자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민구령(閔九齡)이 낙동강가 삼랑루가 있던 자리에 정자 하나를 짓고, 자신의 네 아우인 민구소·민구연·민구주·민구서와 함께 베개를 나란히 하여 기거했습니다. 다섯 형제가 함께 학문을 닦고 실천하면서 보여준 우애는 향도에 그 평판이 자자해졌어요.

이들의 명성이 높아지자 1547년(명종 2), 당시 경상도 관찰사 임호신이 직접 찾아와 그 사실을 조정에 알렸고, '오우정(五友亭)'이라는 현판을 써 붙였습니다.

이후 1563년(명종 18), 지역의 사림들이 민씨 5선생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정자 안에 오우사(五友祠)를 지었고, 기사비를 세웠습니다. 오우사는 이후 삼강사로 불리다가 다시 삼강서원으로 승격하면서 더욱 정중한 제향의 예를 갖추게 되었어요. 임진왜란으로 정자와 사당이 불탔지만,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었습니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97년 민씨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재건했고, 1979년 14세손 민병태의 주선으로 현재의 삼강서원 현판을 달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강당과 사당, 조선 후기 건축의 정통

시습재 건축
시습재 건축

삼강서원은 강당, 시습재(동재),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칙의 팔작지붕 5량가로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던 공간이었고, 동쪽 시습재는 기숙사로 쓰인 건물이에요.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5형제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매년 9월이 되면 이곳에서 향사를 지내면서, 500여 년 전 형제들의 학문과 우애를 기리고 있습니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어, 계절마다 다른 풍경 속에서 이 땅의 선비정신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도시전설 팁
삼강서원 방문 시 정확한 개방 일정과 입장 정보는 방문 전에 확인해 두세요. 특히 향사 일정(9월)에 맞춰 방문하면, 서원의 전통 제례 문화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우정의 5형제가 보여줬던 우애와 학문의 열정이, 오백 년을 거쳐 삼강서원 마당에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낙동강 바람을 맞으며, 조선 선비들의 삶의 방식을 잠시나마 마주해봅니다.
#삼강서원#민씨5형제#삼랑진#낙동강#조선학자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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