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읍성,
세종 19년에 세운 고을의 성곽
1437년의 기록부터 지금까지, 600년을 견딘 석조 요새

진도읍 성내리의 철마산 아래에는 오래되고도 견고한 성이 있어요. 바로 진도읍성인데, 이곳은 진도가 독립된 하나의 군으로 인정받으면서 세워진 성이랍니다. 세종 19년, 즉 1437년에 축성된 이후 600년 가까이를 견디며 진도의 역사와 함께해온 이 성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완전한 원형은 남지 않았지만, 그 흔적들은 여전히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어요.
세종 시대, 진도군의 자주권을 표현하는 건축
진도읍성의 축성은 단순한 방어 시설의 건설이 아니었어요. 성의 둘레가 3,400척, 높이가 11척이었고, 세 개의 성문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진도가 독립된 군으로서의 위상을 갖기 위한 상징적 건축물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또한 옹성이 14개, 치첩이 58개나 있었고, 성 안에는 연못과 우물 5개가 설계되었다고 전해지니, 얼마나 정교하게 계획된 건축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4각형의 성벽, 그 독특한 구조
진도읍성의 건축 형태도 흥미로워요. 원래 성곽 형태는 4각형이었는데, 서벽을 동벽보다 짧게 쌓아 올렸다고 해요. 이런 비대칭적인 구조는 지형을 적극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거라고 생각해요.
현존하는 성벽 중에서 동북 모퉁이의 군강공원 쪽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높이가 2~3. 5m 정도, 길이가 약 50m 정도라고 합니다.
흔적 속에서 읽어내는 역사
북쪽의 성벽은 현재의 군청과 진도초등학교 북쪽 부지의 외곽을 감싸고 있다고 해요. 군청(현 문화예술관) 뒤쪽에는 높이 1. 8~2m의 성벽이 약 50m 정도 남아있고, 현재는 높이 1~1.
2m 정도의 성벽 하단부만 남아있는 부분도 있다고 합니다. 서쪽의 성벽은 학교부지 서쪽에 약 50m가 남아있다고 하니, 마치 성벽이 현대 도시의 일부가 되어버린 셈이에요. 이런 흔적들을 따라가보면 과거 진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원형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이 부분부분의 성벽들이 주는 이야기는 충분해요. 진도가 얼마나 중요한 고을이었고, 얼마나 정성스럽게 방어 시설을 갖추었는지, 그리고 600년의 세월을 어떻게 버텨왔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600년을 견디며 진도를 지킨 석성, 그 흔적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