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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Light장흥 웹진 · 장흥 인사이드 · 2026-09-27 · 읽는 시간 5분

이색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장흥 예양서원

여러 차례 배향을 더하며 이어온 서원의 발자취를 만나보세요

이색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장흥 예양서원
장흥 현지 사진

전남 장흥군 장흥읍에 자리한 예양서원은 고려 말의 학자 이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에요. 1620년에 처음 문을 연 뒤로 여러 차례 배향 인물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해요. 서원이라는 공간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하나씩 짚어보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으니 함께 살펴볼게요.

이색을 기리며 문을 연 예양서원

예양서원
예양서원

예양서원이 세워진 계기는 고려 말의 학자 이색을 추모하는 데 있었어요. 이색은 흔히 목은이라는 호로 널리 알려진 고려 말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예요.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20년에 창건되어 위패를 모신 것이 예양서원의 출발점이에요.

서원은 조선시대에 선현을 기리는 제향과 함께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던 공간으로 알려져 있어요. 예양서원 역시 창건 이후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온 곳이라고 소개되고 있어요. 이름은 다르지만 전국 곳곳의 서원들이 이렇게 배움과 추모를 함께 품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예양서원을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져요.

예양서원은 전남 장흥군 장흥읍 예양4길에 자리하고 있어요. 처음 찾아가는 길이라면 지도 앱에 '예양서원'을 검색해 위치를 미리 확인해두는 게 편해요. 이용정보에 따르면 주차가 가능하다고 하니, 차로 이동하는 분들도 크게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을 거예요.

1620년예양서원이 이색을 기리며 처음 세워진 해

예양서원의 이야기는 창건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인물들이 하나둘 더해졌고,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서원이 걸어온 세월이 자연스럽게 그려져요.

세 차례에 걸쳐 늘어난 배향 인물들

예양서원
예양서원

1668년에는 신잠과 김광원이 예양서원에 추가로 배향되었어요. 창건 당시 이색 한 사람을 기리던 서원에 새로운 이름이 더해지면서, 서원이 품는 이야기도 그만큼 넓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이후 1681년에는 남효온이 추가 배향되었어요. 남효온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인데, 이런 이름이 예양서원의 위패에 함께 모셔지게 된 거예요. 1683년에는 유호인이 마지막으로 추가 배향되면서 지금과 같은 배향 구성이 갖춰졌다고 해요.

정리해보면 예양서원의 사우에는 이색을 중심으로 신잠, 김광원, 남효온, 유호인까지 모두 다섯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셈이에요. 창건 이후에도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 차례에 걸쳐 배향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예양서원이 오랜 시간 여러 세대에 걸쳐 채워진 공간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체크리스트
사우: 이색 등 다섯 분의 위패
강당: 원내 행사와 회합 장소
제숙사: 향례 때 제관이 머무는 곳

이렇게 배향된 다섯 분의 위패는 실제로 어떤 공간에 어떻게 모셔져 있을까요? 경내를 이루는 건물들을 하나씩 짚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어요.

사우, 강당, 제숙사로 이루어진 경내

예양서원
예양서원

예양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은 3칸 규모의 사우예요. 사우 중앙에는 이색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좌측에는 남효온과 신잠의 위패가, 우측에는 김광원과 유호인의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어요. 위패의 배치만 봐도 이 서원이 누구를 중심에 두고 어떤 순서로 인물들을 기려왔는지 가늠해볼 수 있어요.

사우 옆에는 4칸 규모의 강당이 자리하고 있어요.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의 협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내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와 회합의 장소로 쓰인다고 해요. 제향을 담당하는 사우와는 다른 쓰임새를 지닌 공간이라는 점을 보여줘요.

마지막으로 4칸 규모의 제숙사가 있어요. 제숙사는 향례를 치를 때 제관들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매년 9월 9일 열리는 향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사우, 강당, 제숙사를 차례로 둘러보면 예양서원이 제향과 교육, 그리고 향사 준비까지 아우르는 공간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위패 하나하나에 새겨진 이름들이 서원이 걸어온 시간을 말해줘요.

창건 이후 예양서원도 시간의 풍파를 피해가지는 못했어요. 지금 우리가 만나는 예양서원의 모습은 그 이후의 복원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결과예요.

1970년 복원 이후 지금의 예양서원

예양서원은 1970년 지방 유림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창건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며 여러 사정으로 원형이 흐트러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역 유림들의 노력으로 다시 세워져 지금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셈이에요.

복원 이후에도 예양서원의 전통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어요. 매년 9월 9일에는 향사가 열려 이색을 비롯한 다섯 분의 위패를 기리는 자리가 마련된다고 해요. 향사가 열리는 날이 아니더라도 서원은 연중무휴로 상시 개방되어 있어 언제든 찾아가 볼 수 있어요.

실제로 둘러볼 때는 사우에서 위패의 배치를 먼저 살펴본 뒤, 강당에서 원내 행사가 열리는 공간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제숙사까지 순서대로 둘러보면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해요.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다면 방문 전에 안내 전화로 미리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Cityzine 팁
연중무휴로 상시 개방되어 있고 주차도 가능해요. 유모차 대여나 신용카드 결제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하니, 방문 전 061-863-7071로 문의해보는 걸 추천해요.
이색을 기리는 다섯 분의 위패를 따라가다 보면 예양서원의 시간이 한눈에 들어올 거예요 🙂
글 · Cityzine 편집부 · 2026-09-27 발행링크 복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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