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삼랑성,
단군의 세 아들이 지킨 해상 요새
마니산 참성단과 함께 단군 유적을 이루는, 고려 몽골군 방어의 주전장

강화도 하면 고려 때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웠던 여러 성곽들이 떠올라요. 그중에서도 삼랑성은 해상 방어의 중심이었던 곳이에요. 단군의 전설까지 담긴 이 성곽이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모습인지 함께 정리해봤어요.
단군의 세 아들, 세 봉우리를 맡다
강화군 길상면에 자리한 삼랑성의 이름은 흥미로운 전설에서 비롯됐어요. 단군의 세 아들이 정족산의 세 봉우리를 각각 맡아 성을 쌓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를 본 사람들이 '사내 랑(郞)'이라는 글자를 써서 삼랑성이라 부르게 됐다고 해요. 해발 222m의 정족산에 있다고 해서 정족산성이라고도 불리고 있어요.
이렇게 단군 건국신화와 직접 연결되는 이름을 가진 만큼, 마니산 참성단과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유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름이 가진 뜻이 얼마나 깊은지는 모르겠지만,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에 이 자리에 성을 쌓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성을 쌓는 데 사용한 거친 활석 같은 자연 재료와 축성 기법을 보면, 당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 1739년과 1764년에 각각 중수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다듬어지게 됐어요.
몽골의 침입을 막은 해상 요새의 역할
삼랑성이 역사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고려시대예요.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부터 개경과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중요한 방어선이었거든요. 둘레가 약 2.
3㎞에 달하는 이 성은 산 정상부에서 남쪽 능선까지 산의 지형을 따라 높낮이 있게 쌓여 있었어요. 바다로부터의 침략에 대비해 설계된 만큼, 해상 방어의 중추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이 역사적 중요성은 1866년의 병인양요 때도 이어져요. 당시 양헌수 부대가 이 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한 승전지이기도 합니다. 강화도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우리 선조들의 의지가 담긴 장소라면, 삼랑성은 그 의지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방문하실 때는 이런 역사의 무게를 느껴보시면서 걸어보시는 걸 권해드려요.
성 안의 가장 오래된 사찰, 전등사
삼랑성의 또 다른 가치는 성곽 내부에 있는 전등사라는 사찰에 있어요. 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기도 하고,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절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강화도 역사 여행을 하신다면, 삼랑성의 웅장한 성곽을 둘러보는 것과 함께 성 안의 전등사를 함께 체험해보시는 코스도 좋을 것 같아요.
성을 따라 산책하면서 당시 축조된 남문터에 설치된 문루 터 같은 흔적들을 찾아보실 수 있어요. 성을 중수할 때 세워졌던 '종해루'라는 이름의 남문은 현재는 터만 남아 있지만, 그 자리에 서서 강화도 일대를 바라보면 당시 이 성이 얼마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는지 직접 느껴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단군의 전설이 살아 있는 해상 요새에서, 고려 선조들의 항전 정신을 느껴보세요. 강화도 문화유산 여행의 중심이 될 만한 곳이에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