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실학자 이재 황윤석이 나고 자란 초가집
정면 7칸 초가 안채와 위패, 1909년 재건 이야기까지 함께 둘러보는 고창 성내면 고택

전북 고창군 성내면 조동길 33에 자리한 황윤석 생가는 조선 후기 실학파 언어학자였던 이재 황윤석(1729~1791)이 태어난 집이에요. 그의 선친인 황전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지금도 정면 7칸 규모의 초가지붕 안채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옛 모습을 찬찬히 가늠해볼 수 있어요. 규모가 큰 고택인 데다 안채 안팎으로 살펴볼 부분이 적지 않은 곳이라, 시간을 넉넉히 잡고 천천히 둘러보기 좋아요.
오늘은 이 집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따라가 볼게요.
실학자 이재 황윤석, 이 집에서 태어나다
황윤석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파 언어학자로 알려져 있어요. 유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당시 학자가 탐구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분야를 폭넓게 연구한 인물로 전해지는데, 이렇게 여러 갈래의 학문을 한 사람이 두루 다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남긴 발자취가 궁금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언어학이라는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폭넓게 탐구했다는 점에서, 그를 단순히 한 분야의 학자로만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이 집은 황윤석 본인이 아니라 그의 선친인 황전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요. 아버지가 마련한 집에서 태어나 훗날 큰 학자로 성장했다는 흐름을 알고 나면, 같은 안채를 보더라도 조금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게 돼요. 생가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거고요, 한 학자의 시작점이 되었던 공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 집을 걷는 발걸음이 조금은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조선 후기는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중시하는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풍이 활발히 논의되던 시기였어요. 이런 흐름 속에서 황윤석 같은 학자들이 등장했다는 배경을 알고 찾아가면, 고창 성내면의 이 조용한 고택이 한층 입체적으로 다가올 거예요. 지금은 한적한 시골 마을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자란 한 사람이 당대의 폭넓은 학문 세계로 나아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걸어보세요.
잡석기단 위에 올린 정면 7칸의 안채
황윤석 생가의 안채는 높이 80cm의 잡석기단 위에 세워져 있어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로 지어진 초가집인데, 이 정도 규모면 일반적인 초가집치고는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고 해요. 마당에 서서 안채 전체를 눈에 담아보면 그 규모가 한눈에 느껴질 텐데, 기단 위로 길게 이어진 처마 선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이 집을 둘러보는 좋은 방법이 될 거예요.
이 안채는 전형적인 남부 지방의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무더운 여름을 나야 하는 남부 지방에서는 대청을 두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집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인데, 황윤석 생가의 안채도 그런 지역적 특징을 담아 지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규모가 큰 만큼 한 바퀴 둘러보는 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니 여유 있게 움직여보세요.
칸의 개수만 보면 단순한 숫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마당에서 처마 끝까지 이어지는 길이를 눈으로 따라가 보면 이 집이 왜 규모가 큰 건물로 소개되는지 실감할 수 있어요. 안채를 정면에서 한 번, 옆에서 한 번 둘러보면서 기단의 높이와 칸의 너비를 함께 살펴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가 될 거예요.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면 마당 가운데쯤에서 안채 전체가 들어오도록 한 걸음 물러서서 찍는 게 좋고, 처마 아래 그늘에서 잠시 앉아 쉬어가도 좋아요.
마루, 방, 대청, 부엌으로 이어지는 안채 구조
안채 내부는 동쪽 맨 끝 칸이 마루로 되어 있고, 그 옆으로 방 한 칸, 대청 두 칸, 부엌 한 칸이 순서대로 자리해요. 방과 대청, 부엌이 나란히 이어지는 배치를 따라 걸어보면 옛날 이 집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그려져요. 마루에서 시작해 방과 대청을 지나 부엌까지, 순서대로 눈에 담아보면 생활 공간이 어떻게 나뉘어 있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요.
특히 대청 북쪽 벽 위에는 평해황씨 선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요. 위패가 놓인 대청은 단순한 생활 공간을 넘어 조상을 기리는 공간으로도 쓰였다는 걸 짐작하게 해주는 부분이에요. 대청 앞에 서서 위패가 놓인 자리를 바라보면 이 집이 지금도 문중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라는 게 느껴질 텐데, 조용히 예를 갖추고 둘러보면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될 거예요.
안채를 둘러볼 때는 이렇게 순서를 정해두고 천천히 살펴보면 놓치는 부분 없이 이 집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어요. 특히 대청은 위패가 모셔진 공간인 만큼 조용히 예를 갖추고 둘러보는 게 좋겠고, 방과 부엌을 지나며 옛 생활의 흔적을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도 놓치지 마세요. 칸마다 다른 쓰임새를 떠올려보면서 걷다 보면, 짧은 관람 시간도 꽤 알차게 채울 수 있을 거예요.
초가지붕에 담긴 사연과 1909년의 재건
황윤석 생가는 중산층 가옥이라 기와를 얹을 수 있는 형편이었는데도 지붕은 초가로 되어 있어요. 기와를 덮으면 혈이 눌려서 집안이 좋지 않다는 풍문 때문에 일부러 초가를 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요. 형편이 되는데도 굳이 초가를 고집했다는 사연을 알고 지붕을 올려다보면, 그냥 지나칠 뻔한 지붕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느끼게 돼요.
원래 안채 뒤편에는 사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어요. 사랑채와 문간채도 한때 소실되었다가 1909년에 다시 지어졌다고 전해져요. 오랜 세월 동안 이 집이 겪었을 크고 작은 사건들을 떠올리며 안채 뒤편 사당터까지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은 관람 방법이에요.
지금 남아 있는 건물과 옛터를 나란히 살펴보면, 이 집이 지나온 시간의 층이 한층 실감 나게 다가올 거예요.
기와 한 장 대신 지켜낸 건 어쩌면 집안의 평안이었는지도 몰라요.
이렇게 안채와 사당터, 그리고 1909년에 다시 지어진 사랑채와 문간채까지 차례로 둘러보면 황윤석 생가가 걸어온 시간이 한눈에 그려질 거예요. 조용한 성내면 동네를 함께 산책하듯 걸어보는 것도 이 고택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고, 마을 어귀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들어오면 고택을 마주하는 순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질 거예요.
칸칸이 쌓인 이야기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황윤석의 시간 속을 거니는 기분이 들 거예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