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웹진김제 인사이드 · 2026-09-08 · 읽는 시간 2분

효의 전통이 숨 쉬는 장소,
김제 불로마을의 낙양사

조선 명신 삼형제를 모신 사당에서 만나는 조상들의 충절

효의 전통이 숨 쉬는 장소, 김제 불로마을의 낙양사
김제 현지 사진

전북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여산송씨 집성촌인 불로마을에는 조용히 세월을 지나온 사당이 있습니다. 바로 낙양사예요. 이 사당은 조선시대 저명한 인물이었던 송정기, 송정구, 송정모 삼형제를 모시는 곳이에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효성과 지조를 지켜온 한 집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입니다.

조선의 충절을 기록한 삼형제

낙양사 경내 전경
낙양사 경내 전경

죽계 송정기는 장남으로서 인자함과 효성으로 정조 21년(1797년)에 정려를 받았습니다. 그 명성은 이웃 고을까지 전해져, 사림들이 흠모하던 인물이었어요. 중간 형 벽계 송정구는 형을 부모처럼 섬기며 효와 예를 집안의 근간으로 삼았고, 향인들의 존경 속에 송정기와 함께 육송사에 배향되었다가 역시 정조 때 정려를 받게 됩니다.

막내 송정모도 어려서부터 순화한 성품과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특히 송시열이 덕원으로 귀양 갈 때 항소한 뒤 두문불출하고 세상과 단절한 절개로 향리 사람들의 감복을 받았어요. 사림들이 사당에 모시고 싶을 만큼 존경받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장소를 옮겨가며 지켜온 위패

사당의 건축 디테일
사당의 건축 디테일

이 삼형제의 위패는 한 곳에 머물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1675년(숙종 1년) 금구현 동도면 상학리(현재의 금구면 금구리)에 학천사를 세워 모셨는데, 화재로 소실되자 금구면 삼봉리 거야마을에 있던 육송사로 옮겨집니다. 그런데 1869년 고종 6년, 육송사가 철폐되면서 위패는 또다시 옮겨야 했습니다.

결국 1910년(순조 4년), 지금의 자리 청운4길에 새로운 사당을 세우고 '낙양사'라 이름 붙인 거예요. 시간 속에서 세 번이나 옮겨가며 지켜온 조상들의 뜻이 이 건물에 담겨 있습니다.

불로마을은 여산송씨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곳을 찾으면 삼형제의 충절과 효성이 얼마나 오래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낙양사는 단지 종교 시설이 아니라, 한 집안이 지켜온 가치와 신념이 고스란히 보존된 역사 공간인 셈이에요.

도시전설 팁
낙양사는 사적인 사당이므로 방문 전에 현지 관광안내소나 김제시청에 개방 여부를 미리 확인하시는 걸 권합니다. 불로마을의 다른 역사 유적과 함께 둘러보면 여산송씨의 역사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어요.
효와 충절로 세 번의 이동을 견뎌낸 사당, 낙양사. 조선의 마음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져 왔는지를 느껴보는 시간이 될 거예요. 김제 여행, 계속할게요!
#낙양사#김제시관광지#역사문화유산#금구면불로마을#여산송씨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08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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