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웹진›흥복사, 보덕 스님이 세우고 다시 일어난 절
Spot Light김제 웹진 · 김제 인사이드 · 2026-10-07 · 읽는 시간 7분

흥복사,
보덕 스님이 세우고 다시 일어난 절

정유재란에 불타고 흥복 처사가 다시 세운 김제 승반길의 절 이야기

흥복사, 보덕 스님이 세우고 다시 일어난 절
김제 현지 사진

전북 김제시 승반길 안쪽, 흥사동이라는 동네에는 흥복사라는 절이 자리하고 있어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창건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 사연을 켜켜이 품고 있는 곳이에요. 절 이름에 들어간 '흥복'이라는 두 글자에도 재건의 역사가 숨어 있는데, 650년 창건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시간을 하나씩 따라가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어요.

이번에는 창건부터 지금까지, 흥복사가 걸어온 길을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승반길 안쪽, 흥사동에 자리한 절

흥복사(김제)
흥복사(김제)

흥복사는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승반길 103, 흥사동에 자리하고 있어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인데, 말사라는 건 규모가 큰 본사에 딸려 있으면서도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작은 절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예요. 그러니까 흥복사를 둘러본다는 건 김제 지역에서 금산사와 이어져 있는 불교 전통의 한 자리를 만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본사인 금산사가 전북을 대표하는 큰 사찰로 잘 알려져 있는 만큼, 그 말사인 흥복사도 나름의 무게를 지닌 절이라고 볼 수 있어요. 불교 조직에서 본사와 말사의 관계를 알아두면, 다른 지역의 절을 찾아갈 때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요.

김제는 너른 평야 지대로 잘 알려진 지역이에요. 호남평야의 일부를 이루는 곡창 지대라는 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만나는 깊은 산사를 떠올리고 간다면 흥복사의 자리는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어요.

승반길을 따라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자리에 절이 들어서 있어서, 차로 이동하기에도 비교적 수월한 편이에요. 경내 주차가 가능하다고 안내되어 있으니, 자동차로 움직이는 분들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처음 가는 길이라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그대로 입력해 찾아가면 되는데, 정확한 진입로나 주차 공간이 헷갈릴 수 있으니 출발 전에 전화로 한 번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안내 전화번호가 따로 마련되어 있으니, 운영 상황이나 길 안내가 필요하면 그쪽으로 물어보면 돼요. 평야 지대에 있는 절이라 접근이 수월한 편이지만, 처음 방문이라면 여유 있게 시간을 잡고 출발하는 게 마음 편해요.

불에 타 사라진 자리에도, 다시 세우려는 마음은 끝까지 남아 있었어요.

650년 창건부터 정유재란 소실까지

흥복사(김제)
흥복사(김제)

흥복사의 역사는 650년, 의자왕 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고구려에서 내려온 보덕이라는 스님이 이 절을 처음 세웠고, 그때는 이름이 승가사였다고 전해져요. 삼국시대 한가운데서 세워진 절이라는 점에서, 흥복사가 품고 있는 시간의 길이를 가늠해볼 수 있어요.

지금 우리가 보는 전각들과는 다른 모습이었겠지만, 절의 뿌리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창건 이후로도 절은 여러 차례 다시 짓고 고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해요. 다만 정확히 몇 번, 어떻게 중건되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관련 기록이 온전히 남지 않은 탓일 텐데, 그만큼 이 절이 거쳐온 시간이 길고 사연이 많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어요.

결정적인 시련은 1597년, 선조 30년에 일어난 정유재란 때 찾아왔어요.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에 이어 벌어진 일본의 2차 침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시기에 절이 완전히 불타버리면서 흥복사는 한동안 폐허로 남게 되었어요. 창건부터 이어오던 절의 모습이 이때 사실상 끊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 전국 각지의 많은 사찰이 비슷한 피해를 입었던 시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흥복사도 그 흐름 안에 있었던 셈이에요.

다음 이야기는 바로 이 폐허에서 다시 시작돼요.

체크리스트
1625년, 흥복 처사가 극락전을 중건하며 '흥복사'라는 이름이 생겨났어요
1943년, 법운 스님이 극락전과 관음전 등을 중수했어요
1961년, 월주 스님이 금산사와 흥복사 주지를 겸임하며 정화운동을 이끌었어요
1976년부터 1979년까지 대대적인 중창 불사가 이어졌어요

흥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연, 그리고 근현대의 재건

폐허가 된 절터는 오랫동안 비어 있지 않았어요. 1625년, 인조 3년에 김제에 살던 흥복이라는 처사가 부처님의 감응을 받아 이 자리를 기원도량으로 삼았다고 해요. 그가 극락전을 중건하면서부터 절의 이름이 흥복사로 바뀌었는데, 지금 우리가 부르는 이름이 바로 이때 생겨난 거예요.

한 사람의 신앙심이 절의 이름까지 바꿔놓았다는 점이 흥복사 역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에요.

그렇다고 절의 운명이 순탄하게만 이어진 건 아니었어요. 흥복사는 이름을 얻은 뒤에도 다시 퇴락하는 시기를 겪었고, 본격적으로 다시 일어선 건 근대에 들어선 1943년이었어요. 이 해에 법운 스님이 극락전과 관음전 등을 중수하면서 절은 다시 제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어요.

창건과 소실, 중건과 퇴락을 되풀이해온 흐름이 이 시점에서 비로소 안정을 찾아간 셈이에요.

이후 흥복사는 전라북도 지역 불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돼요. 1954년 불교정화운동 때는 교단의 행정본부 역할을 맡았고, 1961년에는 월주 스님이 금산사와 흥복사의 주지를 함께 맡으면서 이 지역 정화운동의 핵심 역할을 했다고 전해져요. 1976년부터 1979년까지는 대대적인 중창 불사가 이어지면서 절의 면모가 크게 새로워졌다고 하니, 지금 경내에서 볼 수 있는 전각들 상당수가 이 시기를 거치며 다듬어진 모습일 가능성이 커요.

600년경내 신단수의 수령

경내를 둘러본다면 놓치지 말 것

지금의 흥복사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미타전, 미륵전, 삼성각, 사천왕전, 그리고 요사채인 정혜원과 또 다른 요사, 수각인 불유각까지 여러 채의 건물이 널찍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전각이 한 곳에 몰려 있지 않고 여유 있게 펼쳐져 있어서, 천천히 걸으며 하나씩 둘러보기 좋은 구조라고 할 수 있어요. 건물 이름만 따라가도 대웅전, 미타전, 미륵전처럼 서로 다른 부처님과 보살을 모신 공간이 나뉘어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건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또 하나의 볼거리는 수령 600년 가량 된 신단수예요.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켜온 나무인 만큼, 흥복사가 거쳐온 창건과 소실, 재건의 시간을 곁에서 지켜본 증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까이에는 설천이라는 이름의 우물도 있으니, 전각들을 둘러보는 길에 함께 챙겨보면 좋아요.

나무와 우물 모두 오래전부터 이 절터를 지켜온 존재라는 점에서, 전각 못지않게 눈여겨볼 만해요.

경내를 돌아보는 순서에 정해진 규칙이 있는 건 아니니,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까운 전각부터 차례로 둘러보면 길을 헤매지 않고 편하게 돌아볼 수 있어요. 사천왕전처럼 입구 쪽에 자리한 건물부터 시작해 안쪽 전각들로 이동하는 방식도 괜찮은 동선이에요. 신단수와 설천은 전각들 사이 어딘가에 자리해 있을 테니, 둘러보는 길에 천천히 눈에 담아가면 좋아요.

Cityzine 팁
흥복사는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절기인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돼요.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은 쉬는 날이니 이 점은 미리 챙겨두면 좋아요. 경내 주차가 가능하고, 궁금한 점은 063-547-7364로 문의할 수 있어요.
오래전 불에 타 사라졌던 절이 이름처럼 다시 일어선 모습을 직접 보고 오면, 승반길 산책이 한층 더 특별하게 느껴질 거예요 🙂
#흥복사#김제 흥사동#사찰#금산사 말사#신단수
글 · Cityzine 편집부 · 2026-10-07 발행링크 복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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