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삼랑성,
단군의 세 아들이 지킨 산성
정족산 위의 전설, 1,000년의 시간을 담은 역사 유적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삼랑성은 이름부터 흥미로워요. 단군의 세 아들이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정족산의 한 봉우리씩 맡아서 쌓게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사내 랑(郞)을 써서 '삼랑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전설 같지 않나요?
고려부터 조선까지, 개경과 한양을 지킨 성
삼랑성은 고려시대 이후 개경과 한양을 방어하는 성곽으로 기능했어요. 강화도 남쪽 해발 222m의 정족산에 자리한 이 산성은 정족산성으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둘레는 2.
3㎞ 정도이며, 성곽은 산 정상부에서 남문쪽 해발 75m 능선까지 산의 지형을 따라 쌓아서 북쪽과 남쪽의 고도 차가 꽤 크다고 해요.
마니산 참성단과 더불어 단군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라는 점에서 강화가 지닌 상징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어요. 성을 쌓은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거친 자연 활석을 이용한 삼국시대 축성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된 시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답니다.
조선 시대 중수와 1866년 병인양요의 무대
영조 시대에 두 번의 중수가 이루어졌어요. 1739년(영조 15)에 중수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라 지었다고 하네요. 1764년(영조 40)에는 다시 한번 성을 중수했어요.
이렇게 계속되는 정비가 이 성이 얼마나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양헌수 부대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승전지가 바로 이곳이었어요. 서양의 강력한 군대를 상대로 벌인 이 전투는 강화도의 역사 속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랍니다. 지금의 조용한 산성 위에서, 그 험난했던 순간들을 상상해본다면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 될까요?
삼랑성 안에 숨겨진 보물, 전등사
삼랑성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자 강화에서 제일 큰 절인 전등사가 있어요. 산성만 보러 가도 훌륭하지만, 산성 안의 역사 문화유산까지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게 이곳의 매력이에요. 하나의 여행지가 여러 층의 역사를 품고 있으니까요.
단군의 전설이 살아있는 산성에서 강화의 깊은 역사를 느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