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웹진›왕건을 살린 장수, 신숭겸장군유적 이야기
Spot Light대구 웹진 · 대구 인사이드 · 2026-09-28 · 읽는 시간 5분

왕건을 살린 장수,
신숭겸장군유적 이야기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이 목숨으로 지킨 자리, 대구 지묘동에서 만나보세요

왕건을 살린 장수, 신숭겸장군유적 이야기
대구 현지 사진

대구 동구 지묘동에 자리한 신숭겸장군유적은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에요. 왕건을 대신해 목숨을 던진 자리에 순절단과 지묘사가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만큼, 천 년 전 역사의 한 장면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어요. 신숭겸길이라는 도로명에서도 이곳이 장군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고요.

이제 신숭겸 장군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리고 이곳에 어떤 이야기가 얽혀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볼게요.

고려 건국의 숨은 주역, 신숭겸 장군

신숭겸장군유적
신숭겸장군유적

신숭겸은 평산 신씨의 시조로 전해지는 인물이에요.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며 고려 건국에 이바지했다고 기록돼 있어요. 고려 개국 1등 공신이라는 위치만 봐도 그가 이 시기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왕조가 바뀌는 격변의 순간에 함께한 인물이었던 셈이에요.

원래 신숭겸은 궁예가 세운 나라 태봉의 기병장수였다고 해요. 그런데 궁예가 왕위에 오른 지 몇 년 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심해졌다고 전해져요. 이에 동료 기장들과 뜻을 모아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새 왕으로 받들어 고려를 세우게 되었다고 해요.

신숭겸을 비롯한 이들의 결단이 없었다면 고려라는 나라 자체가 다른 모습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에요.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지묘동에 남은 유적이 단순한 기념 공간이 아니라 고려 건국이라는 역사적 전환점과 맞닿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신숭겸길이라는 이름도 이곳이 장군과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자리라는 걸 보여주는 흔적이에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신숭겸이 어떤 순간에 목숨을 바쳤는지 좀 더 자세히 짚어볼게요.

왕의 옷을 입고 대신 나선 장수, 신숭겸

공산에서 벌어진 운명의 순간

신숭겸장군유적
신숭겸장군유적

고려 태조 10년인 927년,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신숭겸은 왕건과 함께 출전했다고 해요. 이때 왕건이 바로 이곳 공산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전해져요. 후백제는 견훤이 세운 나라로, 이 시기 고려와 크고 작은 전투를 여러 차례 벌였다고 알려져 있어요.

위기의 순간, 신숭겸은 왕건의 옷을 입고 변장한 채 대신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고 전해져요. 왕건은 그 틈을 이용해 홀로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하고요. 자신의 목숨을 던져 군주를 살린 셈이니, 고려 건국 이후에도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어요.

공산이라는 지명이 지금까지 이 유적과 함께 회자되는 것도 이런 사연 때문이에요.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몹시 애통히 여겨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춘천인 광해주에서 예를 갖춰 장례를 치렀다고 전해져요. 왕이 직접 예를 갖췄다는 사실만 보아도, 신숭겸이 고려 왕실에서 어떤 존재로 기억되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어요. 장례가 치러진 곳과 순절한 곳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이에요.

체크리스트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
927년, 공산에서 왕건을 대신해 순절
지묘동에 순절단과 지묘사(미리사) 건립
왕건이 광해주에서 예를 갖춰 장례

지묘동에 남은 자취, 순절단과 지묘사

신숭겸장군유적
신숭겸장군유적

신숭겸이 순절한 이곳에는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한 순절단과 지묘사, 즉 미리사가 세워졌다고 전해져요. 왕건은 이곳에 토지까지 내려 절이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고 하니, 고려 왕실이 이 자리를 얼마나 각별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어요. 명복을 빌게 했다는 기록에서도 왕건이 신숭겸을 향해 품었던 마음을 엿볼 수 있어요.

지묘동이라는 동네 이름 자체가 이런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 짐작해볼 수 있어요. 신숭겸장군유적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곳이 단순한 사찰이나 사당이 아니라 한 인물의 순절 현장이자 기억의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가 유적으로 남아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은 대목이에요.

대구 동구에 위치한 이 유적을 둘러보다 보면, 오래전 있었던 전투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세워진 순절단, 지묘사의 흔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올 수 있어요. 역사 속 인물의 흔적을 실제 공간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책이나 자료로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줄 거예요. 고려 건국 초기의 이야기를 눈앞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해요.

927신숭겸이 공산에서 순절한 해(고려 태조 10년)

신숭겸장군유적 둘러보기, 어떻게 찾아갈까

신숭겸장군유적은 대구광역시 동구 신숭겸길 17, 지묘동에 자리하고 있어요. 대구 동구는 대구광역시를 구성하는 자치구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고, 도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거리에 이런 역사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주소를 미리 확인해두면 길 찾기가 한결 수월할 거예요.

분류상 관광지로 등록되어 있는 만큼,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고려 건국 초기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곳이에요. 순절단과 지묘사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927년 공산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는 것도 이곳을 둘러보는 좋은 방법이 될 거예요. 신숭겸이라는 인물의 삶을 알고 나서 찾아가면 같은 공간도 다르게 다가올 수 있어요.

신숭겸길이라는 도로명을 따라가면 유적에 다다를 수 있으니, 주소를 미리 확인하고 움직이면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어요. 이용시간이나 주차 여부처럼 방문 전에 확인해두면 좋은 정보는 아래 팁에서 함께 안내해드릴게요. 대구 동구의 다른 장소와 함께 일정을 짜본다면 하루 동안 여러 이야기를 만나볼 수도 있을 거예요.

Cityzine 팁
운영시간은 10:00~17:00이고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주차도 가능해요. 방문 전 궁금한 점이 있다면 053-981-6407로 문의해보면 정확한 안내를 받을 수 있어요.
천 년 전 한 장수의 마음이 지묘동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발걸음을 옮겨 그 이야기를 직접 느껴보세요 🙂
#신숭겸장군유적#지묘동#관광지#고려 건국#공산 전투
글 · Cityzine 편집부 · 2026-09-28 발행링크 복사공유하기

함께 읽으면 좋은 이야기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