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정신을 기린 조선의 건축,
연안이씨 쌍효각
형제의 효성이 세운 정려, 건축으로 남은 가르침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에는 조선 후기의 효자 형제 이시희와 이시걸의 업적을 기리는 쌍효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연안 이 씨 가문의 후손으로, 부모와 조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 형제가 함께 정성을 다해 시묘한 효자들이었어요.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위기의 시대에도 그들의 효성은 꺾이지 않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정려는 오늘날까지 조선의 미덕을 전하고 있습니다.
효의 시대를 넘은 형제의 이야기
이시희와 이시걸 형제는 연안 이 씨 문강공인 이석현의 4세손입니다. 부친과 모친의 상을 당하자 형제가 함께 정성을 다해 시묘했어요. 시묘란 부모를 잃은 뒤 관을 묻은 곳 옆에 움막을 짓고 삼 년간 곡을 하며 애도하는 조선시대의 효도 실천 방식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임진왜란이 발생한 당시에도 이 두 형제가 시묘를 이어갔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효성을 잃지 않은 그들의 절개는 후대에 큰 감동을 주었어요.
이들의 효성을 참작하여 1722년에 이 두 형제가 살고 있던 자리인 충주시 살미면 신당리에 효자를 표창하던 정려가 세워졌습니다. 정려는 효자와 열녀를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 세우는 기념 건축물로, 그 자체로 조선사회에서 최고의 명예였어요. 하지만 충주댐 건설로 원래의 위치가 수몰되면서, 후손들이 1983년 현재의 자리로 정려를 옮겨 복원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으로 드러난 조선의 미학
연안이씨 쌍효각의 건축은 조선 후기의 미학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각문을 세운 사괴석 담장 내에 남향으로 배치되었으며, 건물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입니다. 사면에는 홍살이 둘러져 있어서 개방성과 폐쇄성의 균형을 이루고 있어요.
구조를 보면 원형 초석을 놓고 원형 기둥을 세워 이익공 계통의 공포를 구성했으며, 익공 끝에는 연꽃 모양을 새겨 넣었습니다.
창방으로 짜인 기둥 사이에는 화반 한 개를 놓아 주심도리 장여를 받치도록 했고, 가구는 굴도리 4량 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겹처마 팔작지붕은 조선 후기 정려 건축의 전형적인 형태로, 재료와 공법에서 모두 철저한 규칙을 따르고 있어요. 이 정려를 보면 효라는 가치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그리고 그것을 기리기 위해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을 만들어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형제의 효성이 담긴 이 건축을 보면, 조선이 얼마나 깊이 있는 정신문화를 추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효의 가치, 아직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