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중앙탑면,
천년을 넘은 흙무덤을 만나다
누암리신라고분군에서 읽는 충주의 오래된 시간
충주시 중앙탑면 루암리, 야트막한 구릉 위에 누암리신라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고분군'이라는 이름 그대로, 여러 기의 옛 무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유적이다. 신라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면, 아주 오래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자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정확한 조성 시기나 출토 유물의 세부 내용, 규모 같은 전문적인 정보는 이 글에서 단정하지 않는다. 문화재 관련 세부 사항은 현장 안내판이나 충주시 문화재 자료를 통해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오늘은 신라 고분이라는 유적이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이곳이 자리한 중앙탑면과 충주라는 도시의 역사적 결을 함께 짚어보려 한다.
고분이라는 단어 앞에 서면 늘 마음이 숙연해진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에, 천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마지막 자리이기 때문이다. 누암리신라고분군을 함께 걸어보자.
고분군이 품은 시간
고분은 예로부터 신분이 높은 이들의 무덤을 흙으로 덮어 봉긋하게 쌓아 올린 무덤 양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신라를 비롯한 삼국시대에는 이런 봉토 무덤이 지역마다 무리를 지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 안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신앙을 짐작하게 하는 유물이 함께 묻히곤 했다고 전해진다. 고분군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대개 이런 무덤이 한둘이 아니라 여러 기가 무리를 이루고 있는 자리를 뜻한다.
누암리라는 지명이 붙은 이 고분군 역시, 신라 시대 이 일대에 자리 잡았던 세력의 흔적을 품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정확히 어떤 신분의 인물들이 묻혔는지, 어떤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는지는 전문 자료를 통해 확인하는 게 정확하겠지만, 이런 유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땅의 오랜 내력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고분군을 둘러볼 때는 이곳이 단순한 흙무더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 새겨진 자리라는 걸 기억하며 걷는 게 좋다. 이런 유적 앞에서는 늘 걸음을 조금 늦추게 된다. 천년의 시간을 건너온 자리 앞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신라 고분에서는 토기나 금동으로 만든 장신구, 무기류 같은 부장품이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유물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 수준과 기술, 신앙 체계를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전해진다. 누암리신라고분군에서도 발굴 과정을 통해 여러 유물이 확인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정확한 출토 내역은 문화재 자료를 통해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고분은 발굴 이후에도 봉분 형태를 그대로 복원해 보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유적의 원형을 최대한 지키면서도 후손들이 그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으로 이야기된다. 누암리신라고분군을 둘러보며 이런 보존의 의미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충주, 중원경의 기억을 품은 도시
앞서 계명산자연휴양림 이야기에서도 언급했듯, 충주는 통일신라 시대 오소경 가운데 하나인 중원경이 있던 고장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조용한 지방 도시지만, 한때는 신라가 지방을 다스리기 위해 세운 다섯 작은 서울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누암리신라고분군이 이 도시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런 오래된 역사적 위상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목으로 보인다.
중앙탑면이라는 지명 자체도 예사롭지 않다. '중앙탑'이라는 이름은 이 일대에 신라 시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탑이 있어 붙여진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역시 충주가 신라와 깊은 인연을 가진 땅이라는 걸 다시 한번 보여주는 단서로 볼 수 있다. 누암리신라고분군과 함께 이 일대를 둘러보면, 충주가 품은 신라의 시간을 좀 더 입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산과 호수의 고장으로만 알려진 충주지만, 이렇게 한 겹 더 들여다보면 천년을 넘는 역사가 곳곳에 새겨진 도시라는 걸 알게 된다. 여행이란 이렇게 겉모습 너머의 이야기를 하나씩 발견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중앙탑면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탑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문화재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국가가 지정해 관리하는 문화재가 있는 지역 안에 누암리신라고분군까지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이 일대가 신라 시대부터 얼마나 중요한 땅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신라 고분이라고 하면 흔히 경주를 떠올리기 쉽지만, 신라의 영향력이 미쳤던 지역 곳곳에서 이런 고분군을 만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중원경이었던 충주 역시 그런 지역 가운데 하나로, 누암리신라고분군은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도 신라 문화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고분군을 걷는 법
고분군은 대개 야외에 넓게 펼쳐진 유적이라, 날씨가 좋은 날 여유 있게 걸으며 둘러보는 게 가장 좋다. 봉긋하게 솟은 무덤들이 늘어선 풍경은 계절에 따라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해 질 무렵의 노을빛 아래 고분군을 바라보는 풍경은 한 번쯤 담아둘 만하다는 이야기가 여행자들 사이에서 종종 전해진다.
충주 여행 코스를 짤 때, 계명산자연휴양림에서 자연을 만끽하고 누암리신라고분군에서 역사를 되짚어보는 일정을 함께 묶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산과 호수, 그리고 천년의 역사까지 하루 안에 모두 담아보는 충주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고분군 주변으로 펼쳐진 들판은 계절마다 다른 색을 입는 것으로 보인다. 봄에는 푸른 새싹이, 가을에는 황금빛 들판이 고분과 어우러져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낼 것 같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계절을 달리해 이곳을 몇 번이고 다시 찾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고분군을 방문할 때는 무덤 위로 올라가거나 봉분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기본 예절로 여겨진다. 문화재를 보호하며 관람하는 태도가 후대에도 이 유적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된다. 누암리신라고분군을 찾을 때도 이런 예절을 지키며 둘러보길 권한다.
충주 여행에서 신라의 흔적을 좇다 보면, 이 도시가 단순히 산과 호수의 고장을 넘어 한반도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담당했던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누암리신라고분군이 그런 깨달음을 주는 조용한 유적이라고 생각한다.
천년 전 사람들의 자리를 오늘 우리가 조용히 걷는다는 것, 생각할수록 특별하죠. 누암리신라고분군 다녀오셨다면 어떤 느낌이었는지 한테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