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천전리 지석묘군,
5000년 선사시대 고인돌을 만나다
소양강변 청동기시대의 흔적, 춘천분지 초기 부족사회의 증거
고인돌이라 부르는 지석묘를 보셨나요?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지배층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거대한 돌로 쌓아올린 구조물인데, 춘천 천전리에 그런 고인돌들이 한데 모여 있어요. 청동기시대의 살아있는 역사를 직접 발로 걸으며 만날 수 있는 곳이라 한번 소개해볼까 합니다.
거대한 돌로 지은 청동기시대 무덤, 지석묘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에요. 흔히 고인돌이라고 부르는 이것들은 경제력이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어요. 받침돌과 덮개돌로 이루어진 구조인데, 평평한 거대한 돌 위에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매장한 바둑판식 두 가지 형태가 있답니다.
이렇게 큰 돌을 다루려면 당시로서는 상당한 기술력이 있어야 했을 거예요.
천전리의 고인돌들은 탁자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원래는 발굴조사 때 10기가 한곳에 무리 지어 있었다고 해요. 이렇게 여러 고인돌이 한 지역에 모여 있다는 것은 그 시대에 이미 춘천분지에서 공동체 사회가 형성되었다는 의미라고 보고 있어요. 현재는 5기가 남아있는데, 덮개돌의 길이가 2.
6~2. 2m 정도 되고 받침돌의 높이는 1. 12m 정도입니다.
돌화살촉과 민무늬토기, 당시의 삶을 말해주는 유물들
천전리 지석묘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꽤 흥미로워요. 돌화살촉 3개, 대롱구슬, 민무늬토기 조각 등이 다량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이런 유물들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화살촉이 나왔다는 것은 사냥을 했다는 뜻이고, 민무늬토기는 당시의 일상 식기였을 거예요.
대롱구슬처럼 이미 장신구를 만들어 몸을 치장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특히 민무늬토기를 사용하면서 소양강변에서 농경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해요. 사냥만 하는 사회에서 농경을 시작했다는 것은 그 지역 인구가 증가했다는 뜻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배층이 생기고 무덤도 이렇게 웅장하게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춘천분지 초기 부족사회의 중요한 증거
천전리 지석묘군이 학계에서 주목하는 이유는 이 유적이 한국 선사시대 연구에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여러 고인돌이 한곳에 무리 지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무덤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그것은 이미 춘천분지에서 체계적인 부족사회가 형성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라는 뜻이거든요.
5000년 전 이 지역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느 정도 사회 조직이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인돌은 단순히 묻혀 있는 옛 물건이 아니에요. 우리가 이곳에 서서 이 거대한 돌들을 바라볼 때, 청동기시대 춘천에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강을 따라 정착했고, 공동체를 이루고, 시간이 흐르면서 계층 사회로 발전했는지를 그대로 만날 수 있답니다.
찾아가기 전 알아두면 좋은 정보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천전리 685-7에 자리하고 있어요. 이번 자료에서는 별도의 이용요금이나 시설 이용시간, 휴무일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방문 전 춘천시 관광 안내나 현지 문의를 통해 최신 정보를 확인하시길 권해드려요.
소양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고인돌을 직접 눈으로 보면 책에서 읽던 청동기시대가 갑자기 생생해져요. 춘천의 역사 기행을 계획하신다면 소양강댐, 의암호 같은 다른 명소들과 함께 이 천전리 지석묘군을 묶어서 하루 코스로 짜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거대한 돌 위에 서 있으면 5000년 전 누군가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해요. 춘천 역사 기행의 출발점으로 삼아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