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서흥김씨 삼강정문,
충절과 효심과 정절이 모인 가문의 기념
한 가문에서 충신, 효자, 열부 4명, 『삼강행실속록』에 기록된 영광

안성 고삼면의 고삼호수 근처에 서흥김씨삼강정문이 조용히 서 있어요. 이것은 조선시대 충신 김충수와 그의 아들 김함의 효행, 그리고 후손의 열 부인 온양 정 씨, 청주 한 씨의 행적을 기록한 정문(旌門)이에요. 한 가문에서 충신 1명, 효자 1명, 열부 2명이 나왔다니,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에요.
더욱 놀라운 건 이들이 모두 『삼강행실속록』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임진왜란 때의 부자 동시 순절
김충수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죽산에서 왜군과 접전했어요. 하지만 결국 적에게 붙잡히고 말았어요. 그 순간 아들 김함은 부친을 구하고자 적진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역사 속 많은 효자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죽음이 확실한 적진 속으로 뛰어드는 그 순간의 심정은 얼마나 절실했을까요. 결국 부자는 동시에 순절했고, 조선 사회는 이를 큰 충절의 사건으로 기억했어요. 선조 39년(1606)에는 김함의 효를 기려 효자 정문이 내려졌습니다.
이후 숙종 26년(1700)에는 김충수의 충정을 기려 충신 정문이 내려졌어요. 부자의 순절 이후 94년이 지나서였지만, 그들의 행적이 후대에도 잊혀지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자호란 속의 여성 열사들
같은 가문의 여성들도 나라의 위기 속에서 절절한 선택을 했어요. 병자호란에 적을 피해 투신하여 정절을 지킨 김함의 손녀며느리 온양 정 씨와, 부군이 중병을 앓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고 부군을 따라 순절한 6대손며느리 청주 한 씨가 바로 그들입니다.
온양 정 씨는 영조 16년(1740)에 열부로 명정되었고, 청주 한 씨는 영조 13년(1737)에 열부로 명정되었어요. 부부가 함께 죽음으로 절을 지키고, 손가락을 자르면서까지 남편을 따르는 그 정절의 모습은, 당시 조선 사회가 얼마나 절절한 시대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정문들의 보존, 현대에 이르러
이 정문들은 원래 각각 다른 곳에 세워졌다고 해요. 하지만 1958년 고삼저수지 관개공사로 인해 현재의 장소로 이전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정문과 현판들을 한 군데 모아 보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한 곳에 모여 있으니, 가문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며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본채 주변에는 담장을 두르고 앞에 일각문을 두었으며, 본채는 앞면 4칸·옆면 1칸으로 지붕 선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집이에요. 앞면에만 홍살이 있어요. 잘 정돈된 잔디와 나무들 가운데 담장으로 둘러쳐진 아담한 모습이, 충절과 효심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 되어 있답니다.
방문 전에 꼭 알아두세요
서흥김씨삼강정문은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고삼호수로 141-30에 위치하고 있어요. 고삼호수 근처라서 함께 둘러보기 좋은 위치네요.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 정보가 확인되지 않았으니, 방문 전에 안성시 관광 안내에 문의해보세요.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가문이 지켜낸 나라와 절절함을 느껴보세요. 정문 앞에서 조선시대의 충절이 다시 살아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