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웹진안성 인사이드 · 2026-09-25 · 읽는 시간 3분

안성 죽산성지(이진터성지),
병인박해의 피가 흘렀던 땅

1866년 25명 이상의 순교자, 마지막에 잊혀진 그곳을 기억하다

안성 죽산성지(이진터성지), 병인박해의 피가 흘렀던 땅
안성 현지 사진

안성 일죽면의 죽산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교우들이 처형되고 심문과 고문을 당했던 슬픔의 터예요. 지금은 조용한 들판이지만, 160년 전 이곳에서 얼마나 참담한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알면, 이 땅을 밟는 발걸음 자체가 거거느려집니다. 충청·전라·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에 도호부가 설치되었던 곳이었어요.

병인박해의 소용돌이 속 죽산

안성 죽산성지
안성 죽산성지

1866년 병인박해는 한반도 천주교사에서 가장 가혹했던 시기였어요. 현재 죽산면사무소 자리에서 많은 천주교인들이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고 해요. 여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은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이만 해도 25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척화비를 세우고 오가작통(五家作統)으로 사학 죄인을 색출하며 무차별하게 천주교인들을 끌어다가 처형하던 당시 상황으로 보아, 실제 순교자들은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죽음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요.

이진터에서 '잊은 터'로의 변화

안성 죽산성지
안성 죽산성지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陳) 터라고 해요.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으로 불려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그 이름은 슬픔 속에서 변했어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는 의미로 '잊은 터'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름 하나가 그 시대의 고통을 얼마나 잘 말해주고 있는지요.

두들기, 호송길의 쉼터

죽산에는 또 두들기라는 곳이 있다고 해요. 죽산 읍내에서 15리쯤 떨어진 곳인데, 지금은 삼죽면 소재지로 80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인가가 드문 작은 주막거리였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주막거리의 역할인데요.

용인, 안성, 원삼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포졸에게 잡혀 가는 호송길에 잠시 쉬어 가는 곳이 되곤 했다고 해요. 죽주산성으로 향하는 생사를 결정하는 길의 마지막 쉼터가 됐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 두들기도 아마 그런 슬픈 역사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죽산에서 기억하기

160년이 넘은 지금, 죽산성지는 그 참담한 역사를 조용히 간직하고 있어요. 순교자들의 이름이 모두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이곳을 방문하고 그들을 기억한다면 그것 자체가 그들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 될 것입니다.

방문 전에 꼭 알아두세요

죽산성지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종배길 115에 위치하고 있어요. 순교지이므로 방문할 때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져주세요. 이용요금, 개방 시간, 휴무일 정보가 확인되지 않았으니, 방문 전에 안성시 관광 안내에 문의해보세요.

또한 인근의 종교 단체에 문의하면 더 자세한 역사 설명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시전설 팁
이용요금·개방 시간·휴무일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순교지 방문이므로 경건한 태도로 방문해주세요. 방문 전에 안성시에 문의 후 가세요.
병인박해의 슬픈 역사가 있는 죽산성지에서, 신앙의 순결함을 기억해보세요. 160년 전 그곳에서 남겨진 영혼의 기도가 여전히 들릴 거예요.
#죽산성지#이진터성지#병인박해#순교#천주교
글 · 도시전설 편집부 · 2026-09-25 발행링크 복사카카오톡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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