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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Light영덕 웹진 · 영덕 인사이드 · 2026-09-29 · 읽는 시간 6분

영덕 운산서원,
서원에서 서당으로 이어진 교육사

담암 백문보와 성헌 백현룡을 배향한 영덕 병곡면의 옛 서원 이야기

영덕 운산서원, 서원에서 서당으로 이어진 교육사
영덕 현지 사진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길에 자리한 운산서원은 담암 백문보와 성헌 백현룡, 두 분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에요. 영덕은 동해안을 따라 자리한 지역이라 바다와 어촌 마을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병곡면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조용히 자리를 지켜온 서원도 만날 수 있어요. 오늘은 운산서원이 어떤 곳이고 어떤 역사를 지나왔는지, 알려진 사실을 중심으로 하나씩 짚어볼게요.

담암 백문보와 성헌 백현룡을 배향한 서원

운산서원은 담암 백문보와 성헌 백현룡, 두 분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에요. 배향이라는 말은 학덕이 높은 인물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니, 운산서원 역시 이 두 분을 기리는 제향 공간으로 세워진 곳이라고 이해하면 돼요. 서원 이름에 담긴 뜻이나 두 분의 구체적인 행적까지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지만, 이분들을 기리는 자리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요.

서원은 조선시대에 흔히 볼 수 있던 공간으로, 학문을 가르치는 강학 기능과 선현을 기리는 제향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었어요. 운산서원도 이런 서원의 전형을 따라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고, 그래서 단순한 사당이 아니라 교육과 제사가 함께 이루어지던 복합적인 공간으로 볼 수 있어요. 이 두 가지 기능이 한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점이 서원이라는 건축 형식의 특징이기도 해요.

이름은 낯설어도, 마을을 지켜온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어요.

지금 운산서원을 찾아가면 두 분을 기리던 제향 공간의 흔적과 함께, 이 서원이 지나온 시간의 결을 함께 느껴볼 수 있어요. 정확히 어떤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지,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지는 자료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방문 전에 미리 문의해보는 걸 추천해요. 현장에서 안내판이나 표지석을 함께 살펴보면 서원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질 거예요.

영해지방에서 드물었던 41칸 규모

기록에 따르면 운산서원은 건립 당시 41칸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이었다고 해요. 영해지방에서 이 정도 규모의 서원은 흔치 않았다고 전해지니,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서원이 이 자리에 들어서 있었던 셈이에요. 41칸이라는 수치만 놓고 봐도 이 서원이 단순한 향촌의 작은 시설이 아니라, 지역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공간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규모만 컸던 게 아니라 서원으로서 갖춰야 할 면모도 고루 갖추고 있었다고 전해져요.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을 비롯해 서원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구성을 두루 갖춘, 격식 있는 서원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런 기록을 보면 운산서원이 세워질 당시 이 지역에서 얼마나 공들여 지어진 공간이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어요.

체크리스트
배향 인물: 담암 백문보, 성헌 백현룡
건립 당시 규모: 41칸
이용시간·휴무일: 전화 문의
문의처: 안내센터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이 건립 당시의 41칸 규모 그대로인지는 오랜 시간이 흐르며 변화를 겪었을 가능성이 있어서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폐원과 재건을 거치는 과정에서 건물의 규모나 구성이 달라졌을 수 있으니, 현재의 정확한 모습이 궁금하다면 안내센터에 직접 문의해보는 걸 추천해요. 방문 전에 한 번 확인해두면 현장에서 아쉬움 없이 둘러볼 수 있어요.

대원군의 서원철폐령과 폐원

운산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한때 폐원되는 시기를 겪었어요. 전국 곳곳의 서원들이 함께 정리되던 흐름 속에서 운산서원도 예외는 아니었던 거예요. 41칸이라는 큰 규모를 갖추고 있었더라도, 전국적인 서원철폐 흐름 앞에서는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에요.

서원철폐령은 전국의 수많은 서원이 한꺼번에 문을 닫게 만든 큰 사건으로 알려져 있고, 오랜 역사를 지닌 서원들도 이 흐름을 피해가지 못했어요. 운산서원 역시 이 시기를 지나며 한동안 그 자리가 비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지역에서 드문 규모를 자랑하던 서원이었던 만큼, 폐원 당시 아쉬움도 적지 않았을 거예요.

폐원 이후 운산서원 자리가 한동안 어떻게 남아 있었는지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지만, 이후 다시 교육의 명맥이 이어졌다는 점은 뒤에서 살펴볼 만한 이야기예요. 폐원과 재건의 과정을 함께 알아두면 지금 운산서원 터를 둘러볼 때 그 자리가 겪어온 시간을 더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어요. 그럼에도 서원이 남긴 자리와 이름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니,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역사라고 볼 수 있어요.

1899년 서당으로 이어진 교육의 맥

1899년에는 서원의 옛터, 그러니까 유지 위에 서당이 새로 세워졌어요. 폐원되었던 자리에 다시 교육의 공간이 들어섰다는 점에서, 운산서원의 역사가 완전히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서원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어도, 배움의 자리로서 기능은 계속 이어진 셈이에요.

이렇게 세워진 서당은 1950년대까지 사설교육의 명맥을 유지했다고 전해져요.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자리에서 계속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니, 운산서원 터가 이 지역 교육에서 꽤 오랫동안 역할을 했던 셈이에요. 마을의 아이들이 이 자리에서 글을 배우며 자랐을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 터가 지닌 무게가 조금 더 실감 나게 다가와요.

서원에서 서당으로, 다시 오랜 시간 이어진 교육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운산서원이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이 지역의 교육사와 함께한 공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서원에서 서당으로 이어진 이 흐름은 운산서원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해요. 영덕 동해안 쪽 여행길에 병곡면까지 발걸음을 옮긴다면, 이런 흐름을 하나씩 짚어보며 운산서원을 둘러보는 것도 뜻깊은 시간이 될 거예요.

Cityzine 팁
이용시간과 휴무일은 전화 문의로 안내되고 있어요. 방문 전 안내센터(054-730-6297)로 미리 연락해 현재 개방 여부와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확인해보세요.
서원에서 서당으로, 오랜 세월 이어진 이 자리의 이야기를 직접 걸으며 느껴보세요 🙂
#운산서원#영덕 병곡면#관광지#서원#교육유산
글 · Cityzine 편집부 · 2026-09-29 발행링크 복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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