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백인걸을 기리는 용주서원 이야기
1598년 세워져 철폐와 복원을 거친 파주 월롱면의 서원 이야기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에 자리한 용주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청백리로 이름난 휴암 백인걸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에요. 백인걸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후학을 가르치던 옛 집터에, 지방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서원과 사당을 세운 자리라고 해요. 조선시대 서원은 대개 학문을 익히는 강학 공간과 선현을 모시는 제향 공간이 함께 있는 구조였는데, 용주서원도 그런 전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에요.
파주 지역의 유서 깊은 서원 중 하나로, 지금도 매년 제향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니 차근차근 둘러볼 이유가 충분해요.
백인걸 선생을 기리며 세운 서원
용주서원은 1598년, 선조 31년에 건립된 서원이에요. 백인걸 선생(1497~1579)은 조선 중기를 살았던 학자이자 청백리로 녹선된 인물이에요. 청백리란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에게 조정에서 내리던 칭호인데, 백인걸 선생이 바로 그런 인정을 받은 분이었던 거예요.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고 전해지는데, 용주서원이 자리한 곳이 바로 그 시절 선생이 머물렀던 옛 집터라고 해요.
지방 유림들은 백인걸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원을 세우고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셨어요. 서원이라는 공간이 원래 학문을 익히고 유학자를 배향하는 곳이니, 용주서원 역시 선생의 뜻을 잇는 후학들이 모이는 자리였을 거예요. 조선시대 유림들에게 서원은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 사회의 정신적 구심점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하니, 용주서원도 월롱면 일대에서 그런 자리를 지켰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어요.
백인걸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조선시대 청백리로 녹선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관직 생활 내내 청렴함을 지킨 인물이었다는 걸 짐작해볼 수 있어요. 용주서원을 둘러보기 전에 이런 배경을 알아두면, 서원 곳곳의 건물들이 왜 그런 형태로 남아 있는지 조금 더 마음에 와닿을 거예요.
관직을 내려놓은 자리가 후학을 기르는 자리가 되다
이런 배경을 마음에 담고 나면, 용주서원이 걸어온 우여곡절의 역사도 더 흥미롭게 다가올 거예요.
사액에서 철폐, 그리고 복원까지
용주서원이 세워진 뒤에도 이야기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어요. 유생 정재심이 나라에서 서원의 이름을 인정받는 사액을 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서원은 철폐되는 처지에 놓였다고 해요.
서원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랫동안 유허비만 남아 그 터를 지켰어요. 유허비란 건물은 없어졌어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실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세우는 비석인데, 용주서원 역시 한동안은 비석 하나로만 존재를 남긴 셈이에요. 서원이 세워졌다가 철폐되는 일은 조선 후기 서원 정비 과정에서 드물지 않게 있었던 일이라, 용주서원의 이런 우여곡절도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다 1924년, 지역 유생들이 다시 뜻을 모아 서원을 복원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어요. 이때 백인걸 선생과 함께 그의 문인이었던 옥천 조감, 장포 김행, 낙금당 신제현, 당산 백유함 선생 등 네 분의 위패도 함께 모셔 배향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스승과 제자가 한 공간에서 함께 기려지고 있다는 점이 용주서원만의 특별한 이야기예요.
정륜당과 사우, 내외삼문과 홍살문까지, 이제 서원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씩 살펴볼까요?
경내에서 만나는 건물들
용주서원 경내에는 정륜당과 사우, 내삼문과 외삼문, 그리고 홍살문이 자리하고 있어요. 정륜당은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익히던 강학 공간이었을 것으로 보이고, 사우는 백인걸 선생을 비롯한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 건물이에요. 홍살문은 서원이나 향교, 묘역 등 신성한 공간의 입구에 세우는 붉은 문으로, 이 문을 지나면서부터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추게 되는 셈이에요.
사우의 규모는 정면 7. 5m, 측면 5. 2m로, 홑처마에 맞배지붕을 얹은 형태로 지어졌어요.
맞배지붕은 책을 반으로 접어 세운 듯한 단순한 모양의 지붕인데, 서원이나 향교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붕 형식이기도 해요.
사우 왼쪽에는 정조 24년, 그러니까 1800년에 세운 백휴암 선생의 유허비가 자리하고 있어요. 앞서 이야기했던, 서원이 철폐됐던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바로 그 비석이 지금도 경내 한쪽을 지키고 있는 거예요. 건물 하나하나를 둘러보면서 서원이 겪어온 시간의 흐름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자리예요.
구체적인 수치를 보고 나니 사우가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라는 걸 알 수 있죠? 이제 서원을 나와 주변 동네도 함께 살펴볼게요.
월롱면에서 서원 찾아가는 길
용주서원은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용주서원길 46에 자리하고 있어요. 도로명 자체가 '용주서원길'일 만큼 서원이 월롱면을 대표하는 장소라고 볼 수 있어요. 파주는 임진강을 끼고 있는 경기 북서부 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여러 유서 깊은 서원과 향교가 자리했던 고장이기도 해요.
용주서원 역시 그런 지역 학맥의 흐름 속에서 세워진 곳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서원은 연중무휴로 상시 개방되고 있어서, 특별히 요일이나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갈 수 있어요. 봄이나 가을처럼 야외를 걷기 좋은 계절에 방문하면 홍살문을 지나 내삼문, 외삼문을 차례로 둘러보는 동선이 한결 여유롭게 느껴질 거예요. 다만 정확한 관람 가능 시간이나 그날그날의 사정은 방문 전에 파주시청 문화예술과로 확인해보는 게 안전해요.
주차도 가능한 편이라 자차로 이동하는 방문객이라면 크게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어요. 매년 음력 9월 9일에는 파주 유림에서 제향을 지내는 행사가 열리니, 이 시기에 맞춰 방문하면 서원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제향 당일은 평소와 분위기가 다를 수 있으니, 이 부분도 미리 확인하고 움직이는 게 좋아요.
조선시대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모셔진 용주서원, 파주 나들이 코스에 한번 넣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