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을 지켰던 무주 적상산성
고려의 피난처에서 조선의 사고까지, 적상산성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봐요

전북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는 적상산성이라는 오래된 산성이 자리하고 있어요.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이 산성은 고려 후기에 쌓은 방어 성곽으로, 그 뿌리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국경을 맞대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요. 국경의 요새로 시작해 백성들의 피난처가 되었다가, 다시 조선왕조실록을 지키는 자리로 쓰였던 만큼, 한 번 걸어보면 서로 다른 시대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국경의 요새에서 피난처로
적상산성이 처음 자리를 잡은 건 삼국시대예요. 공식 설명을 보면 이곳은 백제와 신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지역에 쌓은 성이라고 소개되어 있어요. 국경 지대라는 특성상 한동안은 군사적으로 중요하게 쓰였을 텐데, 시간이 흐르면서 한때는 방치되기도 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적상산성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늘 '한동안 버려졌다가 다시 중요한 자리로 쓰였다'는 흐름이 반복해서 등장해요.
방치되었던 산성이 다시 주목받은 건 고려 시대예요. 공식 자료에는 고려 시대 국란이 있을 때마다 인근 백성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고 나와 있어요. 국란이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사람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적상산성이 쓰였다는 뜻이에요.
산이 가진 지형 자체가 외부의 침입을 막아내기에 유리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오래 이어갈 수 있었을 거예요.
전북 무주는 전라북도 동부에 자리한 산간 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이런 산악 지형은 예로부터 방어와 피신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적상산성 역시 그런 지리적 조건 위에 세워진 성이라고 볼 수 있어요. 국경의 요새에서 피난처로 쓰이던 적상산성은,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닌 자리로 바뀌게 돼요.
다음 이야기에서 그 변화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게요.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적상산사고
조선 광해군 2년, 그러니까 1610년에 적상산성 안에는 적상산사고가 들어서요.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기록을 지키기 위해 전국에 여러 곳의 사고를 두었는데, 적상산사고도 그중 하나였다고 해요. 원래 있던 사고들이 임진왜란을 거치며 대부분 피해를 입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역사인데, 이후 조선이 기록을 지키기 위한 자리를 다시 정비하는 과정에서 적상산성이 그 중요한 한 자리를 맡게 된 셈이에요.
산 깊숙한 곳에 사고를 마련한 것도 그만큼 안전하게 지키려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짐작해볼 수 있어요.
적상산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가 보관되었어요. 나라의 역사와 왕실의 계보를 담은 자료였던 만큼, 아무 곳에나 둘 수 없는 귀중한 기록이었을 거예요. 이 기록을 보관하기 위해 적상산성 안에는 실록전, 사각, 선원각, 군기고, 대별관, 호국사라는 여러 시설이 함께 들어섰다고 공식 자료에 나와 있어요.
이렇게 여러 건물을 한꺼번에 세운 걸 보면, 사고 하나를 운영하는 데도 꽤 많은 시설과 손길이 필요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임진왜란 이후에는 적상산성에 진을 두어 성을 수축하고 운영했다고 해요. 기록을 지키는 일과 군사적으로 성을 지키는 일이 한 자리에서 함께 이어졌던 셈이에요. 조선왕조실록은 오늘날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기록물인데, 그런 기록을 지키는 자리로 적상산성이 선택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산성이 단순한 방어 시설을 넘어선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던 적상산성도 시대가 바뀌면서 또 한 번 큰 전환점을 맞게 돼요.
국권을 잃고 잊힌 산성
오랜 시간 조선왕조실록을 지켜오던 적상산사고는 순종 3년, 즉 1910년 국권을 빼앗기면서 큰 변화를 맞아요. 나라의 주권을 잃은 뒤 사고는 폐지되었고, 그동안 맡아온 기능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고 해요. 기록을 지키던 시설이 그 역할을 잃었다는 건, 곧 적상산성 전체가 관리와 보호의 손길에서 멀어졌다는 뜻이기도 해요.
오랫동안 지켜오던 자리가 한순간에 쓸모를 잃어버린 셈이니, 그 이후의 시간은 적상산성에게 쉽지 않았을 거예요.
기능을 잃은 뒤로 적상산성은 오랫동안 방치되었고, 그 결과 지금은 성벽 대부분이 무너진 상태라고 해요. 다행히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어서, 안국사 아래 숲 속 등에서 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고 공식 자료에 나와 있어요. 한때 나라의 국경을 지키고 기록을 보관하던 시설이 지금은 숲 사이에 조용히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 장소를 더 특별하게 느끼게 해줘요.
지금의 적상산성은 화려한 성곽의 모습보다는, 오랜 시간이 쌓인 흔적을 천천히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에요. 숲길을 걸으며 무너진 성벽의 자취를 하나씩 발견하다 보면, 앞서 살펴본 국경의 요새와 실록을 지키던 사고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거예요. 이제 실제로 이곳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함께 살펴볼게요.
적상산성 찾아가는 길
적상산성을 찾아가려면 우선 주소부터 확인해두면 좋아요.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자리하고 있고, 이용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상시 개방이라 계절이나 요일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방문할 수 있어요. 쉬는 날도 따로 없이 연중무휴로 운영된다고 하니, 마음먹은 날 편하게 찾아가면 돼요.
다만 한 가지 미리 알아둘 점이 있는데, 주차는 불가능하다고 안내되어 있어요. 그래서 자가용으로 이동할 계획이라면 근처에 차를 세울 곳을 미리 확인해두거나, 대중교통이나 도보 이동 경로를 함께 알아보고 가는 게 좋겠어요. 자세한 길 안내나 현재 상황이 궁금하다면 무주군청 태권문화과에 문의해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공식 자료에서도 안국사 아래 숲 속에서 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으니, 적상산성만 따로 보기보다는 안국사 쪽 길과 함께 둘러보는 방향으로 동선을 짜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무주는 산간 지역이라 계절에 따라 길이나 주변 환경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방문 전에는 최신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나서는 게 안전해요. 역사 속 여러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산성인 만큼, 여유 있게 시간을 잡고 천천히 둘러보시길 추천해요.
국경의 요새에서 실록을 지킨 사고까지, 적상산성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천천히 걸으며 만나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