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적산 남쪽 자락이 품은 천년 고찰 영원사
신라 선덕여왕 때 세워져 고려시대에 다시 일어난 이야기 많은 절이에요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원적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영원사는 신라 선덕여왕 7년, 그러니까 서기 638년에 해호 선사가 처음 문을 연 뒤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절이에요. 절 마당에 서면 천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의 더께가 느껴지는 듯한데, 창건 이후 이름이 바뀌고 불에 타 다시 지어지는 굴곡을 겪으면서도 자리를 지켜온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볼게요.
신라 선덕여왕 7년, 해호 선사가 세운 절
영원사가 처음 세워진 것은 신라 선덕여왕 7년인 638년으로 전해져요. 이때 절을 세운 이는 해호 선사라는 분이었는데, 자리를 잡은 곳은 지금의 원적산 남쪽 기슭이었어요. 원적산은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일대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절이 산의 남쪽 기슭을 골라 앉은 건 볕이 잘 들고 물길을 구하기 좋은 자리를 고르던 옛 절터의 흔한 방식과 통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재미있는 건 처음 절이 들어선 자리와 지금 절이 있는 자리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점이에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초창 당시의 절은 지금의 절터보다 약간 위쪽에 있었다고 해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절이 몇 차례 중창을 거치는 동안 자리도 조금씩 옮겨 온 셈인데, 정확히 언제 어떤 이유로 자리를 옮겼는지까지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절터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이동하는 경우는 오래된 산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해요.
이름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어요. 창건 때부터 일제강점기까지는 영원사가 아니라 영원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해요. '암'이라는 글자가 붙은 데서 짐작할 수 있듯, 한동안은 규모가 크지 않은 암자 형태로 이어져 왔을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어요.
지금의 '영원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시점은 일제강점기 이후로 전해지는데, 이름이 바뀌는 과정 자체가 절이 겪어온 오랜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이름과 자리가 조금씩 달라지는 동안에도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어요. 바로 해호 선사가 처음 절을 세운 그 해, 638년이라는 시작점이에요.
이 창건 이야기와 함께 꼭 따라붙는 것이 하나 더 있어요. 바로 절 안에 모셔졌던 불상과 그 불상을 만든 특별한 돌 이야기예요.
수마노석으로 빚은 약사여래좌상
영원사가 영원암이라 불리던 시절, 이 절에는 수마노석水瑪瑙石으로 조성한 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었다고 해요. 약사여래는 병을 낫게 해주는 부처님으로 알려져 있어서, 예로부터 몸이 아픈 이들이 많이 찾아 기도를 올리던 대상이기도 해요. 그 불상을 다른 돌이 아니라 굳이 수마노석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이 절의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에요.
수마노석은 석영의 한 종류로, 매우 아름다운 빛과 광택을 지닌 돌이라고 해요. 색으로 나누면 붉은빛, 검은빛, 흰빛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고 전해져요. 다른 이름으로는 수만호라고도 부른다고 해요.
석영 계열의 돌답게 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반짝이는 성질이 있어서, 불상이나 탑처럼 오래 두고 볼 공예물을 만드는 재료로 귀하게 여겨졌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어요.
수마노석을 재료로 쓴 예는 영원사 말고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공주 마곡사 법당 앞에는 수마노석으로 만든 수마노탑이 세워져 있다고 해요. 마곡사는 충청남도를 대표하는 고찰 가운데 하나로 잘 알려진 절이라, 그곳의 수마노탑을 먼저 알고 있던 분이라면 영원사의 약사여래좌상 이야기가 한결 더 와닿을 수 있어요.
같은 돌을 골라 쓴 두 절의 이야기를 나란히 떠올려보는 것도 이 절을 더 재미있게 알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돌 하나에도 이렇게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보니, 영원사를 둘러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옛사람들이 이 절에 담아둔 정성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해보게 되는 거예요.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천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는 절이에요.
이 오랜 이야기는 신라 시대에서 끝나지 않고, 고려 시대로 넘어가며 또 한 번 새로운 장을 맞이해요. 절이 한 차례 큰 시련을 겪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이었어요.
고려 문종 22년, 혜거국사의 중창과 은행나무
사적기에 따르면 영원사(영원암)가 처음 세워진 지 400여 년이 지난 1068년, 고려 문종 22년에 혜거국사가 절을 다시 지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때 중창의 사연을 살펴보면, 절이 단순히 낡아서가 아니라 불에 타 없어진 뒤 다시 세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창건 이후 첫 400년 사이에 화재라는 큰 시련을 겪었고, 그 자리를 혜거국사가 다시 일으켜 세운 셈이에요.
혜거국사가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중창이 이루어졌는지 자세한 내막까지는 전해지지 않아요. 다만 절을 다시 세운 해가 1068년이라는 사실만큼은 사적기를 통해 비교적 분명하게 남아 있어요. 신라 선덕여왕 때의 창건과 고려 문종 때의 중창, 이 두 시점을 나란히 놓고 보면 영원사가 얼마나 긴 시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가늠해볼 수 있어요.
이때 혜거국사가 중창을 하면서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가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해요. 나무 한 그루가 그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버텨왔다는 사실은, 어떤 기록보다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어요. 은행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져 있어서 전국 곳곳의 오래된 절이나 마을 어귀에서 수백 년, 때로는 천 년 가까운 나이를 가진 나무를 만날 수 있어요.
영원사의 은행나무도 그런 나무들과 나란히 놓고 볼 수 있는 존재예요.
여기까지 영원사가 걸어온 시간을 한 번 정리해볼게요. 창건부터 중창까지 굵직한 흐름만 짚어봐도 이 절의 연혁이 한눈에 들어와요.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나면, 이제 실제로 어떻게 찾아가면 좋을지가 궁금해질 차례예요. 원적산 자락으로 향하는 길을 하나씩 살펴볼게요.
원적산 자락으로 찾아가는 길
영원사는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원적로869번길 309-52에 자리하고 있어요. 백사면은 이천시 북동쪽에 있는 면으로, 원적산을 사이에 두고 여러 마을과 이어져 있는 지역이에요. 도로명 주소에 '원적로'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절로 가는 길 자체가 원적산과 나란히 이어지는 산길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어요.
차를 가지고 갈 계획이라면 절에 주차가 가능하다고 하니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돼요. 다만 산기슭에 자리한 절인 만큼 산길이나 좁은 도로 구간이 있을 수 있으니, 출발 전에 내비게이션으로 정확한 경로와 도로 상황을 한 번 확인하고 나서는 편이 마음 편해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경우라면 백사면 안쪽까지 들어가는 노선과 배차 시간을 미리 살펴보는 게 좋아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안내전화로 미리 연락해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특히 절 내부를 둘러보는 데 제한이 있는지, 약사여래좌상처럼 특별한 유물을 지금도 볼 수 있는지 같은 세부적인 부분은 전화로 확인하는 게 가장 확실해요. 이용정보에는 연중무휴로 안내되어 있어서 정해진 휴무일 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곳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방문 전 한 번 더 확인해두면 헛걸음하는 일 없이 다녀올 수 있어요.
신라에서 고려까지 이어진 이야기를 따라 원적산 자락을 한 바퀴 걸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