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괘릉 옆 언덕,
연지암 석조 약사여래를 만나는 길
일제강점기 사연을 품은 절과 신라 왕릉 괘릉을 함께 걷는 이야기

경주 괘릉 안쪽, 외동읍 활성리라는 작은 마을 언덕에 연지암이라는 절이 있어요. 이름은 낯설어도 이 절에는 일제강점기 말 창건 이야기부터 신라 왕릉과 나란히 자리한 사연까지, 짧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오늘은 연지암이 걸어온 길과 바로 옆 괘릉까지 함께 살펴보면서, 이 언덕을 어떻게 둘러보면 좋을지 짚어볼게요.
일제강점기 말, 언덕 위에 세워진 작은 절
연지암은 일제강점기 말, 김연지화 보살이 창건한 절로 전해져요. 경주 괘릉 안쪽 활성리라는 작은 마을의 언덕에 자리를 잡았는데, 지금도 주소가 외동읍 활성길로 남아 있는 걸 보면 이 마을의 이름이 절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 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큰 절은 아니었지만, 이 작은 언덕의 절에는 이후 오래 전해질 만한 사연이 시작되고 있었어요.
김연지화 보살은 어느 날 꿈을 꾼 뒤, 길가에 버려져 있던 석불을 직접 찾아내 연지암에 봉안했다고 해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돌부처를 꿈의 계시를 따라 찾아내고, 정성껏 절에 모셔온 이야기는 지금도 연지암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대목이에요. 이 석불이 바로 지금 대웅전에 봉안된 불상의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한 일본군이 이 불상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어요. 불상의 출처를 대라며 연지화 보살을 고문했고, 보살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대웅전에서 마주하는 불상 뒤에는 이렇게 한 사람의 목숨과 맞바꾼 사연이 숨어 있다는 걸 기억하고 가시면 좋겠어요.
버려진 돌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 연지암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이런 사연을 품은 채 지켜져 온 연지암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요? 대웅전 건물과 그 안에 봉안된 불상을 하나씩 짚어보면, 이 절이 걸어온 시간이 좀 더 선명하게 다가와요.
대웅전과 석조 약사여래 입상
연지암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목조건물인 대웅전과 2동의 요사채로 이루어져 있어요. 언덕 위 작은 절이라는 규모에 맞게 크지 않은 구성이지만, 팔작지붕 특유의 곡선이 살아있는 목조건물이 절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고 있어요. 요사채 두 동은 대웅전을 사이에 두고 스님들이 머물며 절의 살림을 이어가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 정도 규모만 봐도 언덕길을 오른 보람이 있다고 느껴질 거예요.
대웅전 안에는 김연지화 보살이 찾아내 봉안했다는 그 석조 약사여래 입상이 모셔져 있어요. 이 불상은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돼 있을 만큼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유산이에요. 창건 당시의 사연을 품은 채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대웅전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걸음이 조심스러워지는 곳이에요.
이 약사여래 입상이 얼마나 영험하다고 알려졌는지, 학업 성취와 사업 성공,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해요.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고 싶다면, 대웅전 안에서 조용히 합장하고 기도를 올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다만 다른 참배객도 함께 있는 공간이니, 조용히 예의를 지키며 둘러보는 걸 잊지 마세요.
연지암이 있는 언덕에서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낮은 구릉 남쪽 소나무 숲에 자리한 괘릉이 보여요. 신라 왕릉 중에서도 유독 이야기가 많은 곳이니, 연지암까지 왔다면 함께 둘러보길 권해요.
이웃한 경주 괘릉, 신라 왕릉의 아름다운 조각
괘릉은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 숲에 자리한 왕릉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년부터 798년까지)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연지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있다 보니, 이 지역을 함께 부를 때 흔히 '괘릉 안쪽 연지암'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해요. 소나무 숲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왕릉의 능선이 눈에 들어와요.
괘릉이라는 이름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전해져요.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 이 자리에는 원래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바꾸지 않은 채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를 치렀다는 속설에서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지금은 연못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이야기를 알고 나면 능묘를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져요.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왕릉 전체의 능선을 눈에 담아보는 것도 괘릉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에요.
괘릉은 유홍준의 '우리 문화 답사기'에도 등장할 만큼 이름이 알려진 곳이에요. 경주에 남아 있는 155개 고분 가운데 능묘 정원이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그 능묘 조각은 통일신라 리얼리즘 조각의 진수로 꼽힌다고 해요. 연지암을 들렀다면 이 조각들을 놓치지 말고 함께 살펴보길 권해요.
이렇게 사연이 겹겹이 쌓인 두 곳을 하루에 함께 보려면, 미리 위치와 걸어야 할 동선을 가늠해두는 게 훨씬 편해요. 언덕길이 있는 만큼 편한 신발을 챙기는 것도 잊지 마세요.
찾아가는 길과 둘러보는 순서
연지암의 주소는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활성길 120-5예요. 외동읍은 경주 시내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안에서도 활성리라는 작은 마을의 언덕에 연지암이 자리하고 있어요.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찾아가면 언덕 초입까지는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고, 근처에 있는 경주 괘릉을 함께 검색해두면 동선을 짜기가 더 수월해요.
언덕 위에 자리한 절이니 살짝 오르막을 오른다는 마음으로 출발하는 게 좋아요. 도착하면 먼저 대웅전에 들러 석조 약사여래 입상을 참배하고, 옆에 자리한 요사채 두 동을 천천히 둘러보는 순서를 추천해요. 그다음 언덕을 내려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괘릉까지 걸어보면, 연지암과 괘릉을 자연스럽게 하루 코스로 묶어볼 수 있어요.
두 곳 모두 야외 공간이 많은 편이라, 계절에 맞는 옷차림으로 다녀오면 한결 편하게 둘러볼 수 있어요.
사찰은 상시 개방돼 있지만, 법회나 행사가 있는 날에는 분위기가 다를 수 있으니 방문 전에 한 번 더 확인해보는 게 좋아요. 참배객이 함께 있는 공간인 만큼 조용히 예의를 지키며 둘러보는 것도 잊지 마세요. 정확한 일정이나 궁금한 점은 아래 안내를 참고해서 미리 물어보고 가면 헛걸음할 일이 줄어들어요.
돌 하나에 담긴 사연과 왕릉의 조각까지, 연지암과 괘릉에서 천천히 걸어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