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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Light나주 웹진 · 나주 인사이드 · 2026-09-29 · 읽는 시간 6분

나주 금성관,
국왕께 예 올리던 객사 건물

매월 1일과 15일 예를 올리고 사신을 맞던 나주목 객사 이야기

나주 금성관, 국왕께 예 올리던 객사 건물
나주 현지 사진

전남 나주시 금성관길 8에는 옛 나주목의 객사 건물인 금성관이 자리하고 있어요. 이름에 들어간 '금성'은 나주의 옛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이름을 딴 건물이 지금도 나주 시내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셈이에요. 매월 1일과 15일마다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 연회를 열었던 자리라고 하니, 오늘 그 앞에 서면 조선시대 나주 고을의 하루가 어땠을지 한번 그려보게 돼요.

나주 금성관, 어디에 있는 건물일까요

나주 금성관
나주 금성관

금성관은 전남 나주시 금성관길 8에 자리한 건물로, 관광정보 데이터베이스에도 관광지로 분류되어 있어요. 주소에 그대로 이름이 들어가 있을 만큼 이 일대에서는 상징적인 건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나주는 조선시대 전라도의 중심 고을 가운데 하나였던 나주목의 터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금성관은 바로 그 나주목의 객사 건물이에요.

객사는 조선시대 각 고을에 두었던 관청 건물 가운데 하나로, 지방을 방문하는 국왕의 위패나 궐패를 모셔두고 예를 올리거나 외지에서 온 관리를 맞이하던 공간이었다고 해요. 금성관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던 나주목의 객사였다는 점에서, 지금 그 앞에 서면 조선시대 지방 행정의 한 장면을 떠올려볼 수 있어요. 관광지로 분류되어 있는 만큼 나주 원도심을 걷다가 자연스럽게 들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용 정보를 보면 금성관은 연중무휴로 운영되고 주차도 가능하다고 안내되어 있어요. 별도의 정기 휴무일이 없다고 하니 나주를 지나는 길에 일정에 맞춰 들러보기 좋은 곳이에요. 다만 세부적인 관람 시간이나 최근 운영 상황은 현장 안내나 문의를 통해 한 번 더 확인하고 가는 편이 좋아요.

국왕께 예를 올리고 사신을 맞던 자리

나주 금성관
나주 금성관

공식 설명에 따르면 금성관에서는 매월 1일과 15일마다 국왕에 대한 예를 올렸다고 해요. 초하루와 보름마다 이곳에서 예를 갖추었다는 뜻인데, 지방에 있으면서도 임금에 대한 예를 잊지 않았던 조선시대 지방 행정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지금은 예를 올리는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건물 안에 서서 그 시절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방문이 될 수 있어요.

또한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는 이곳에서 연회를 열었다고 전해져요. 나주를 지나는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자리가 바로 이 객사였던 셈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지방을 방문한 중요한 손님을 위한 공식 행사장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나주목 안에서도 비중 있는 건물이었다는 걸 짐작해볼 수 있어요.

320.66㎡(97평)전국 객사 건물 중 가장 웅장한 규모

금성관은 정면 5칸, 측면 4칸에 팔각지붕을 얹은 건물로, 전국의 객사 건물 가운데서도 그 규모가 가장 웅장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한 채의 건물이 전국 단위에서 손꼽히는 규모를 갖췄다는 점은, 나주목이 조선시대 지방 행정에서 차지했던 위상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요. 건물 앞에 서서 그 크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도 금성관을 둘러보는 재미 중 하나예요.

성종 때 지어져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다

금성관의 초창은 성종 6년에서 10년 사이, 그러니까 1475년부터 1479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전해져요. 이 시기에 나주목사로 재직하던 이유인이라는 인물이 건물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조선 초기인 성종 연간에 지어진 건물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금성관이 품고 있는 시간의 길이를 짐작해볼 수 있어요.

이후 금성관은 한 번에 완성되어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이 아니라,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요. 오랜 세월 동안 건물을 고치고 다시 손보는 과정이 반복되었다는 뜻인데, 그만큼 나주목에서 이 건물을 중요하게 여기고 꾸준히 관리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해요. 지금 우리가 보는 금성관의 모습도 그런 여러 차례의 손길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체크리스트
정면 5칸, 측면 4칸의 웅장한 규모
성종 6~10년(1475~1479) 나주목사 이유인이 건립
일제강점기 이후 군청 건물로 사용되며 원형 훼손
1976~1977년 완전해체 복원으로 지금 모습 회복

이런 역사를 알고 금성관 앞에 서면, 단순히 오래된 건물 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성종 때부터 이어져 온 나주목의 역사를 함께 마주하는 셈이 돼요. 건물의 규모나 구조를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이 자리에서 몇 번의 중수가 있었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를 떠올려보면 방문이 한층 더 깊어질 수 있어요. 나주 원도심을 걷는 김에 이런 이야기를 하나씩 되새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일제강점기를 지나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다

금성관은 일제강점기 이후로 군청 건물로 사용되면서 한동안 원형이 파괴되는 시기를 겪었다고 해요. 본래 객사로 쓰이던 건물이 행정 관청 건물로 용도가 바뀌면서, 조선시대 당시의 모습과는 다른 형태로 변형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에요. 오래된 건물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겪어야 했던 굴곡을 금성관도 그대로 지나온 거예요.

초하루와 보름마다 이 지붕 아래서 올려졌을 예가 지금도 어딘가 남아있는 듯해요.

이렇게 원형을 잃었던 금성관은 1976년부터 1977년 사이에 완전해체 복원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해요. 건물을 완전히 해체한 뒤 다시 짜 맞추는 방식으로 복원이 이루어졌다는 뜻인데, 그만큼 본래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한 공들인 작업이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지금 우리가 나주에서 만나는 금성관은 바로 이 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세워진 모습이에요.

이런 과정을 알고 보면 금성관은 조선 초기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현대의 복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를 관통해 온 건물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나주라는 도시가 겪어온 시간의 흐름이 이 건물 한 채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에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둘러보면 각 시대의 흔적을 나름대로 짚어볼 수 있는 곳이에요.

Cityzine 팁
금성관은 연중무휴로 운영되고 주차도 가능하다고 안내되어 있어요. 정확한 관람 시간이나 최근 운영 안내가 궁금하다면 나주시 관광 문의처인 061-330-8114로 미리 확인해보고 가면 헛걸음하지 않을 수 있어요.
성종 때부터 지금까지, 금성관 앞에 서서 나주의 긴 시간을 한번 느껴보세요 🙂
#금성관#전남 나주#관광지#객사#나주목
글 · Cityzine 편집부 · 2026-09-29 발행링크 복사공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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